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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유튜버와 작가, 예순 넘어 시작하다 - 주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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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와 작가, 예순 넘어 시작하다

주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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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십대 후반부터는 모임에서 여행을 가도 사진을 잘 안 찍으려 했다. 사진을 찍으면 다른 사람 같아서였다. 자주 보는 사람들은 얼굴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사진 속 내 얼굴은 실제 얼굴과 확연이 차이가 났다. 사진은 거짓말을 못 한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한 친구도 사진 찍자 하면 이제 사진 찍기 싫다고 한다. 단체 사진 찍을 때 안 찍으려고 멀찌감치 떨어진다. 빨리 와서 포즈 잡으라고 하면, “찍기 싫다니까!” 하면서 억지로 사진을 찍는다.
한때는 정말 사진 찍기 싫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꽃의 아름다움에, 풍경의 아름다움에 순간 나를 잊고 폼을 잡는다. 이 시점이 지나면 다시는 이 아름다움을 못 볼 것만 같은 조바심 때문일까?
‘오늘이 내 인생에서 제일 젊지 않은가!’
사진 찍으며 이렇게 스스로를 북돋는다. 사진 찍는 그 순간이 제일 젊은 날이다!

아들에게 전화해서 자랑했다.
“엄마 이번 달 추정 수익이 천 달러야.”
아들네에게 한턱냈다. 이번 달에는 지급이 마감되어 다음 달 말경에 돈이 들어올 거라 했지만 미리 밥을 샀다.
딸네도 손주들을 데리고 갈빗집으로 가서 저녁을 샀다. 손주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처음으로 돼지갈비를 실컷 먹은 네 살배기 손자가 말했다.
“할머니, 배가 많이 아파.”
나는 농담 삼아 이렇게 대꾸했다.
“약국 가서 소화제 사서 먹자.”
그랬더니 손자가 하는 말.
“소화제는 안 먹을 거야. 약만 먹을 거야.”
그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노년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안 먹어도 배부르다”라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요즘에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중년들이 많다.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 해서 이것저것 공부를 하고 각종 자격증을 따며 은퇴 이후를 대비한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 날, 조그마한 옹기에 점심으로 먹으려고 고구마 몇 알을 쪘다. 한창 찌는 중에 물을 조금 부었더니 탄내가 진동했다. 얼른 꺼내보니 고구마 껍질 부분이 조금 타버렸다. 그런데 물을 머금은 고구마는 알을 품은 듯 탱탱했다. 밑부분에서는 진이 나와 끈끈했지만 말랑말랑했다. 그러니까 맛이 더 좋았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났다. 깍두기와의 궁합도 환상이었다.
고구마를 먹기 전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강아지가 내 다리 밑으로 쪼르르 달려와 앉는 것이었다. 고구마 냄새에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일 터이다. 살겠다고 부지런을 떠는 강아지가 귀여우면서도 애틋했다.
평소에는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나 그릴에 굽는다. 똑같은 고구마도 굽는 방법에 따라 맛이 약간 다르다. 그날은 옹기에 구웠다가 나는 맛의 신세계를 만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소소한 행복 아닌가.
우리네 삶도 닮은 점이 많다. 고구마처럼, 마음가짐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행복과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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