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마음 공부에 관하여 - 초걈 트룽파

728x90

마음 공부에 관하여

초걈 트룽파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마음 공부를 시작하거나 오래 한 사람,
마음 공부를 마쳤다고 믿거나 혹은 의심해본 사람,
이들 모두가 한 번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마음 공부가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사이비(가짜)는 있기 마련이어서, 가짜 영성 전문가와 수련 센터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에고(Ego)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이용해 진정한 마음 공부의 길을 교묘하게 방해한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만족하거나,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등, 에고는 너무나 간사해서 스스로를 속이며 잘못된 마음 수행의 길로 이끈다. 이 책은 에고가 만드는 함정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근본적인 마음 공부의 본질과 그 수행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질문과 대답’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이들이 한 번은 가졌을 의심과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준다.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굴복과 열림의 몸짓은 굴복하는 대상과 연결되고 직접 통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거칠고 조잡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난처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굴복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굴복하는 행위에는 바깥의 힘에 대한 숭배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감을 받아 일하는 것, 그리하여 지식을 부어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이곳 서양에서 구루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냥 ‘영적 친구’라고 부르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르침이란 두 마음의 평등한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고도로 진보된 존재와 비천하고 열등한 존재 사이의 주종 관계라기보다 평등한 상호 통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영성이란 매우 자극적이고 다채로운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종교 전통에서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또는 목소리의 톤을 바꾸고 식습관이나 다른 일반 행동거지를 바꾸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 양태를 습관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들은 우리의 천성이 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우리는 그 일상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아, 그 놀라운 체험을 다시 해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 경험하는 대신 그것을 기억하는 데 바쁘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자기기만의 게임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이 말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길은 평화니 전쟁이니 하는 관념을 모두 치워버리고 세상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에 똑같이, 그리고 철저히 당신 자신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기에는 빛도 있고 어둠도 있는데, 그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럴 때 당신은 더 이상 어둠을 반대하며 빛을 옹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된 명상 수련이 에고에서 벗어나는 길인 이상, 미래의 깨달은 마음 상태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요령입니다. 온전한 명상 수련은 본질적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상황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수단들, 그리고 현재의 마음 상태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에고를 초월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모든 명상 수련이 현재 순간에 초점을 모읍니다. 그래서 그것이 매우 효과적인 생활 방식이 되는 거지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그것을 뭐라고 해석하거나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들 위에 어떤 영적 경험이나 철학적 관념 따위를 씌움으로써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어느 유명한 선사가 말했듯이 “밥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잠잘 때는 잠을 잡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완벽하게, 꽉 차게 하세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곧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지 않는 곧은 사람, ‘성자[Rishi]’가 되는 것입니다.

자비는 근본적인 ‘두려움 없음[Fearlessness]’을 속에 품고 있습니다. 망설임 없는 두려움 없음이지요. 이 두려움 없음은 끝없는 관용의 모습을 띤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힘을 남들에게 미침으로써 이루어지는 두려움 없음에 대조가 됩니다. 이 ‘관대한 두려움 없음’이야말로 자비의 본질로서 에고의 동물적 본성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며 안락한 생활 양식에서 퉁겨져 나와야만 합니다. 우리가 명상 수련을 하는 주요 목적은 인습적인 관점에서 보는 대로 정직한 사람 또는 착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안전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자기를 활짝 열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살아가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면을 벗기고 꿰뚫어 보는 맑은 인식의 눈으로 손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보면, 돌의 단단함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속에 지니고 있는 의미까지 파악하게 됩니다. 그것에서 대지의 단단함과 위엄이 표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는 말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에베레스트산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손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돌멩이마다 태산의 단단함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