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도시의 흉년 3 - 박완서

728x90

도시의 흉년 3

박완서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저것들을 그냥 둘 다 기르면 세상없어도 나중엔 상피 붙게 돼 있으니 집안이 망하지.”
“상피 붙다니요?”
“상피 붙는 것도 모르냐? 계집 서방이 된단 말야. 친동기간에.”
남매 쌍둥이를 그대로 기르면 자라서 상피 붙게 돼 있다는 항간 일부의 끔찍한 속설을 할머니가 곧이곧대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걸 핑계로 엄마와 계집아이에게 구박이 자심했다. 문제는 가난이었다. 상피 붙고 안 붙고는 훗날 당해봐야 하는 일이고 당장 시급한 문제는 가난이었다. _ 1권

그 시절 엄마가 수빈이 과외 공부 그룹을 통해 사귄 일류 엄마들 중에는 차관 부인도 있고 청장 부인도 있어서 그런 집에 가서 본 대로 엄마는 우리 집을 하루하루 새롭게 꾸며가는 중이었다. 엄마 딴에는 상류사회에서 본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셈이었지만, 엄마의 눈을 거쳐 엄마의 이해를 통해 재현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일 순 없고, 그 과정에서 생긴 무리가 곧바로 눈에 띄었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는 채로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안 어울렸다. 아무리 비싼 거라도 벼락부자 티나 풍기는 게 고작이었다. 모든 가구도 실수로 잠깐 거기 놓인 것처럼 엉거주춤 거기 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터였다. _1권

내가 타고난 성에 대해 자신이나 안도감을 가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할머니가 무섭도록 초롱초롱한 외쪽 눈으로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며, 남매 쌍둥이는 세상없어도 상피 붙고 마는 법인데 하던 내 성에 대한 무서운 저주, 그 절망의 체험밖에 없는 것이다. _1권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게 그를 탈선시키는 거고, 어떻게 되는 게 내가 다소 상하는 게 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냥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람, 아니 혐오감을 일으키는 삶의 방법에 대한 무분별하고도 열정적인 파괴욕이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원시적인 파괴욕이었다. _2권

“수연아, 너만 알아두거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알아두거라. 정말은 우리 집은 큰 부자가 아니란다. 겨우 먹을 걱정이나 안 하는 쫄데기 부자지, 큰 부자는 못 된단다. 너도 생각해봐라. 그까짓 양갈보 치고 피륙 장사하는 걸로 돈을 벌명 얼마나 벌었겠지? 요새 세상에 그까짓 건 푼돈이야. 사람들이 우릴 큰 부잔 줄 아는 건 다 내 수단에 넘어가서 그런 거야. 내가 왜 돈이랑 문서랑 꽉 쥐고 느이 아버지한테까지 비밀로 하는 줄 아니? 그게 수단이라구. 돈이 많지도 않은데 많은 척하려고 그러는 거라구. 엄마가 너무 의뭉스러운 것 같지만 누구 때문인 줄 아니?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 기죽지 말고 행세하고, 시집 장가 잘 가라고 그러는 게야. 수희 시집 그만큼 간 것만 봐도 알지?” _2권

기억에 남는 문구

내가 꿈꾼 자유는
결코 가출이 아니라 탈피였다.
완전한 탈피를 위해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뱀이 허물을 벗을 때,
벗어버린 허물도 온전하고
자기의 몸도 온전하기 위해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남을 상처내기는 순식간이지만,
그게 아물기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너무 서두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