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저것들을 그냥 둘 다 기르면 세상없어도 나중엔 상피 붙게 돼 있으니 집안이 망하지.”
“상피 붙다니요?”
“상피 붙는 것도 모르냐? 계집 서방이 된단 말야. 친동기간에.”
남매 쌍둥이를 그대로 기르면 자라서 상피 붙게 돼 있다는 항간 일부의 끔찍한 속설을 할머니가 곧이곧대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그걸 핑계로 엄마와 계집아이에게 구박이 자심했다. 문제는 가난이었다. 상피 붙고 안 붙고는 훗날 당해봐야 하는 일이고 당장 시급한 문제는 가난이었다. _ 1권
그 시절 엄마가 수빈이 과외 공부 그룹을 통해 사귄 일류 엄마들 중에는 차관 부인도 있고 청장 부인도 있어서 그런 집에 가서 본 대로 엄마는 우리 집을 하루하루 새롭게 꾸며가는 중이었다. 엄마 딴에는 상류사회에서 본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셈이었지만, 엄마의 눈을 거쳐 엄마의 이해를 통해 재현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일 순 없고, 그 과정에서 생긴 무리가 곧바로 눈에 띄었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는 채로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안 어울렸다. 아무리 비싼 거라도 벼락부자 티나 풍기는 게 고작이었다. 모든 가구도 실수로 잠깐 거기 놓인 것처럼 엉거주춤 거기 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터였다. _1권
내가 타고난 성에 대해 자신이나 안도감을 가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할머니가 무섭도록 초롱초롱한 외쪽 눈으로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며, 남매 쌍둥이는 세상없어도 상피 붙고 마는 법인데 하던 내 성에 대한 무서운 저주, 그 절망의 체험밖에 없는 것이다. _1권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게 그를 탈선시키는 거고, 어떻게 되는 게 내가 다소 상하는 게 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냥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사람, 아니 혐오감을 일으키는 삶의 방법에 대한 무분별하고도 열정적인 파괴욕이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원시적인 파괴욕이었다. _2권
“수연아, 너만 알아두거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알아두거라. 정말은 우리 집은 큰 부자가 아니란다. 겨우 먹을 걱정이나 안 하는 쫄데기 부자지, 큰 부자는 못 된단다. 너도 생각해봐라. 그까짓 양갈보 치고 피륙 장사하는 걸로 돈을 벌명 얼마나 벌었겠지? 요새 세상에 그까짓 건 푼돈이야. 사람들이 우릴 큰 부잔 줄 아는 건 다 내 수단에 넘어가서 그런 거야. 내가 왜 돈이랑 문서랑 꽉 쥐고 느이 아버지한테까지 비밀로 하는 줄 아니? 그게 수단이라구. 돈이 많지도 않은데 많은 척하려고 그러는 거라구. 엄마가 너무 의뭉스러운 것 같지만 누구 때문인 줄 아니?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 기죽지 말고 행세하고, 시집 장가 잘 가라고 그러는 게야. 수희 시집 그만큼 간 것만 봐도 알지?” _2권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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