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사회에서 나의 위치가 어떻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그 순간 나의 감정과 선택을 믿고 싶다. 전진도 후퇴도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내가 은퇴할 시간이 다가와도, 더 이상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도, 내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가든, 취미 생활에 집중하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든 나는 죽을 때까지 《모스크바의 신사》 속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처럼 지루하지 않게 늙어갈 자신이 있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인생을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길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혀 지금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면서 자기만의 들판을 만나기를 바란다. 자기만의 들판에서 우리는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기를, 책장을 덮으며 바라본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나는 하루빨리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 미국에 더 오래 있으라고 나를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미국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운 다음에는 점점 지쳐가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힘을 주고 싶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 이곳에도 애정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 더 마음이 머문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 나라인지 알기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에서 하루하루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한국에서 사는 게 고통스러워서 또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한국을 떠나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모든 선택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이 발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탄핵이라는 거대한 불꽃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더해지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살기 위해 약을 먹고 있다. 상태가 괜찮을 때는 세상 밝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십대 청년이 되지만, 한없이 우울해질 때는 그저 소리 내어 울고, 사람들을 피해 내 안으로 숨어든다.
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오랜 시간 숨 막히게 만드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내 왕관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그 왕관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고 어쨌든 좋은 결과이니 그 정도의 무게는 당연히 견뎌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북토크 참석을 계기로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매일 행복한 순간을 몇 가지라도 만드는 것, 스트레스와 불안을 잘 조절하는 것, 몸과 마음이 상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미리 조금씩 부정적인 것들을 잘 흘려보내는 것이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때조차 그러지 못하는 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너무 열심히 사는 내가 안쓰러워서라도 나 자신에게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한 번 사는 삶에서, 울고 버티는 순간보다 웃고 즐기는 순간이 더 많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 책을 읽고 나도 이 사람처럼 극심한 우울증과 외로움에 허덕이면서 나를 채찍질하면 민사고도, 듀크대도, 하버드 로스쿨에도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나는 정말로 마음이 찢어질지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사람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그렇게 우리 모두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란다.
나는 나다. 그 누구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그 누군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찾아야 할 중심은 다르다. 하지만 중심이 있어야 힘과 용기가 생기는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해보자. 너무 머리 아프게 고민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순간에는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는 더 힘 있게 자신을 안아주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틈틈이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기.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따뜻한 감정을 많이 느끼게 해주면서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 이런 시간을 통해 내 가치를 만들어 나가자. 너무 오랫동안 세상을, 남을 살피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눈을 감고 내 안을 들여다보자.
민사고, 듀크대 조기 졸업, 하버드 로스쿨로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언제부턴가 읽고 듣고 말하는 시간, 느끼고 배우고 교류하는 기쁨, 공감하고 이해하고 치유받는 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분명 뿌듯한 면이 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나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한 순간도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일하는 삶보다는 내 주변을 비롯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삶, 마치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주변을 온기로 감싸듯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평온함을 주는 삶을 꿈꾼다. 그런 시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 법률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과 그로 인한 소득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내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에 힘이 필요하고,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스쿨에 입학했는데, 오히려 핵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고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법을 공부하는데, 정작 이곳에서 나는 자꾸만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모든 수업이 똑같진 않지만 많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이론과 법칙을 해석하고 열심히 토론을 한다. 인류를 위해서든 환경을 위해서든 다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데, 나는 왜 그 속에서 점점 움츠러들고 자신이 없어지는지 혼란스럽다. 남들은 부러워할지도 모를 환경에서 똑똑한 사람들과 매일같이 토론하는 게 어쩌면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의 처지와 상관없이 소위 ‘배운 사람’들의 지식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법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성애를 좋아할 자유가 있다면 동성애를 싫어할 자유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이 둘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성이 아닌 다른 성을 선택하거나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체성과 인격을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는 그 사람에게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 위협을 가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동성애자인 여성이 나에게 고백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스토커처럼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이성애자임을 정중하게 설명한 뒤 마음을 거절하면 그만이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를 좋아한다고 굳이 기분 나빠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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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리뷰 ]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 윤 지
책 정보 : http://bit.ly/2WRWCZD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 / 윤 지 ----------------------------------------------------------------------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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