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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절제의 기술 - 스벤 브링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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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기술

스벤 브링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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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유행이나 흐름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가 항상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사람들은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소셜미디어의 게시물을 확인하고 맛집이든 특가 상품이든 한정판이든 어쩌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라면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혹시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진 않을까, 유행에 뒤처지진 않을까, 나만 소외되진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매 순간 전전긍긍하며 살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24시간 내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사람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건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의 현실이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가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더 많은 행복을 쉴 새 없이 쫓아다니는 데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어쩌면 잠깐은 행복감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내 그 행복에 익숙해져서 다시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계속해서 더 많은 행복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다. 마치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들이켰다가 더 큰 갈증만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쾌락적응’, 또는 더 재미있는 용어로 ‘쾌락 쳇바퀴’라 표현한다.

스토아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된 오랜 철학 전통, 곧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전통에 속한다. 한계를 중시하는 스토아철학의 관점은 새로운 정복 과제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도록 부추기는 대신,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게끔 만든다. 쾌락 쳇바퀴를 굴리는 걸 멈추고, 거기서 내려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우리 삶에 황홀한 행복을 끊임없이 불어넣지는 않는다. 대신 더 크고, 더 좋고, 더 비싸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는 헛된 환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준다.


마음을 쓰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우리라는 사람의 일부가 될 때 가능하다. 키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면 마음이 순결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랭크퍼트는 또한, 우리가 마음 쓰는 것들이 대개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장미에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고 거름을 준다. 그런데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뜻하지 않게 실망하거나 깊은 슬픔을 겪을 위험이 따른다. 흔히 하는 말처럼 그것이 바로 사랑의 대가다.

로버트 구딘은 자신의 책 『합의에 대하여』에서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좋은 친구들」의 한 장면을 언급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왜 좋은 여자를 찾지 않니?”라고 묻자 아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찾아요. 거의 매일 밤요.” 뒤이어 엄마가 “내 말은 함께 정착할 만한 여자 말이다”라고 고집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아들이 다시 대답한다. “찾아요. 거의 매일 밤요.”
유머러스한 대화지만 더 많은 것, 좀 더 다른 것,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태도에 윤리적 의무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사랑과 성이라는 맥락에서 잘 보여준다. 이런 카사노바 같은 태도로 꾸준히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키르케고르가 말한 일종의 심미적 절망 상태로 곤두박질쳐서 영원히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남게 된다.

절제의 기술을 배울 때 머리로만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어떤 삶에 헌신하고 어떤 삶을 놓칠 줄 알아야 하는지를 머리로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몸에 각인되지 않은 윤리,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윤리는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윤리는 추상적이고 지적인 게임이 아니라 실천적 모험이다. 행동의 문제다. 그리고 그 행동을 절제하는 문제다.

스스로 아나키스트 인류학자라 부르는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오늘날 세상에서는 사회적 순기능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허튼 직업들’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허튼 직업은 가치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직 양적인 면만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연봉이 얼마나 되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삶에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런 일에 집중하는 동안 의미 없는 일들은 쉽게 무시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우연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이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 전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생각은 결코 만족을 모를 자기계발과 최대 성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결과가 틀어지면 그 책임을 전부 다 개인에게 돌리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취업이 어려운 것은 노력이 부족하거나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게 잘못이라는 식이다. 사실 그런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정치제도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 누구도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홀로 책임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서로 더 많이 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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