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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정치적인 식탁 -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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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식탁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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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먹지 않았음을 알게 되어 좋았다. 엄마한테 덜 빚진 기분이다. 날마다 내가 쏟아내는 오물을 처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 뱃속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내가 뒤섞어놓은 잡탕일 필요는 없고,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꼭 먹어야 모성을 인증하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 밥상의 존엄을 빼앗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엄마가 무슨 잔반 처리기인가. _ (1장 먹는 여자)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깊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언어가 바로 여성을 ‘먹는다’고 하는 표현이다. 성관계를 ‘떡친다’고 하거나 구멍에 빨대 꽂기 등등으로 표현한다. 김치녀, 스시녀, 된장녀, 간장녀, 밀크티녀, 미국 치즈녀 등 별별 종류의 ‘먹거리 여성’이 온 지구에 있다. 성 매수를 뜻하는 ‘2차’라는 표현도 여성을 먹거리로 여기는 발상에서 비롯한다. 여자가 후식인 줄 안다. 영어에서도 ‘먹다’를 뜻하는 동사 ‘eat’을 여자와의 성관계를 말할 때 활용한다. 여성의 몸은 먹히는 고기이자 보이는 꽃이다. 여성은 식용과 관상용 사이를 오간다. 때로는 여성의 생산성 때문에 열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먹’거나 ‘꺾’거나 ‘따먹’는다. 좋은 말로 여성을 표현한다고 해봤자 꽃이나 열매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먹는 음식으로 대상화되어 남성을 위한 쾌락의 도구가 된다. 여성의 뒤태에 대한 언론의 각종 집착도 여성을 시선이 있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_ (3장 먹히는 여자)

거리를 두면서도 때로 우리는 침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산다. 내가 신세를 질 수도 있고, 나에게 신세 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성격인지,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좀 강한 편이다. 나는 이를 조금씩 흐트러뜨리려 애쓴다. 영원히 젊지 않으며, 영원히 건강하지도 않다.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극적인 순간 나를 구출하는 존재도 인간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연결되어 있듯이, 사회 구성원들은 그렇게 연결된다. 몸의 기능이 재구성되듯이 관계도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영원한 동지도 없지만 영원한 적도 없을 것이다. 곡식을 먹는 벌레, 벌레를 먹는 닭, 닭을 먹는 인간, 죽은 동물에게서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사과나무처럼 서로가 서로를 소화시키며 산다. _ (6장 사랑하는 입)

수년 전 낙산사 가는 길에 사마귀를 옮기는 개미떼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수백 혹은 수천 마리의 개미가 바글바글 모여 죽은 사마귀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상여를 지고 이동하는 장례 행렬 같았다. 어쩌면 그 사마귀는 개미들의 만찬 식탁에 놓일지도 모른다. 장례식인지 만찬 회동인지 알 수 없는 그 개미떼의 행렬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먹는다는 건 매번 장례식이구나. 내 식탁은 늘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례식인 셈이다. 내 삶은 누군가의 죽음을 흡수하며 지탱한다. _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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