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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태도에 관하여 -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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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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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슬픈 얘기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 내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나한테는 이것이 최선이야, 라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만 긋는 것과는 다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는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한테 마음의 문을 연 만큼 딱 그만큼만 나도 마음을 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선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저마다 그 고통을 초월하는 방식이 있다. 어떤 사람에겐 종교가, 어떤 사람에겐 가족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겐 마약이.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고통을 초월하려 한다. 사람의 몸만큼 정직한 건 없고 사람의 마음만큼 조작 가능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상대보다 ‘나’에 대한 일말의 진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니 초점을 상대에게 두기보다 자신의 마음에 먼저 두어야 할 것이다. 타인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내가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열을 올린다면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구 관계뿐만이 아니라 연애에 있어서도 거절을 잘할 줄 아는 것이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다. 내 마음을 줄 수 없을 때 상대에게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 것, 나에게 마음을 주는 것에 기분이 우쭐해져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여지를 주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에는 단칼에 잘라버린 그 상대의 잔인함에 치를 떨어도 속마음을 파악할 수 없는 태도로 오락가락 애매하게 구는 그 사람이 훨씬 더 고약한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서로 확실히 NO를 말하고 오로지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YES를 하는 것. 어른으로서 꼭 갖추고 싶은 습성이다.

저는 하면 된다, 라는 명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말은 적어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발성이라는 측면의 첫 단추, 처음으로 껍데기를 깨고 걸어 나가는 것까지는 무조건 내가 해야 되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뛰어갈 수도 있지만요. 그 스피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어쨌든 껍데기를 깨는 거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거. 가장 중요한 진실이죠.

내가 나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상황에 맞추지 않는다는 것이죠. 주로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고민하는 지점인데요, 가령 나는 어디까지 내 생각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타인들과 불화를 이룰 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타인과의 불화와 나 자신과의 불화 중 무엇을 더 우선시할 것인가, 그런 것은 항상 고민이 되죠.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의 다른 측면도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기존에 가졌던 생각들이 틀렸다 맞았다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구체적인 어떤 부분은 이런 다른 측면이 있었구나, 하고 겸손하게 깨달으면서 수정 보완 해나가는 거죠. 자기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디테일에서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를 다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자잘하게 썰어서 하나하나 곱씹어볼 수 있는 어떤 치밀함, 집요함 그리고 신중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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