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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What the 블립 do we know!? - 윌리암 안츠(William Arntz),마크 빈센트(Mark Vic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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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e 블립 do we know!?

윌리암 안츠(William Arntz),마크 빈센트(Mark Vice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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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은 모두 질문으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도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질문은 모든 인간 지식의 선구자이고 첫 번째 원인이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지식은 질문이라는 가지로부터 뻗어 나온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가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던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요약하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물리학자 닐 보어 역시 “전자가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왜 그 중간 상태에는 머물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준다. 그리고 질문은 미지의 세계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인식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과정이다. 이 과정은 감각 신경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집어 뇌로 전자기적 자극으로 보낼 때부터 시작된다.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자외선을 보지 못한다. 또 새가 감지 할 수 있는 전자기장을 감지할 수 없다. (새들은 이것을 네비게이션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오감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서 대략 1초에 약 4000억 비트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과 독립된 저 밖이라는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원자의 세계는 우리의 관찰에 반응한다. 하지만 개인은 평균적으로 약 6에서 10초 간격으로 집중력을 잃는다. 초점을 맞추고 집중할 능력이 없는 개인에게 어떻게 큰 일들이 반응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우리는 서투른 관찰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관찰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관찰은 기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하루의 일정시간을 할애하여 관찰을 연습하고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그려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해내고 올바로 관찰하게 된다면 그 새로운 미래는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엘린 랜저와 레베카 레비는 다른 문화에 살고 있는 노년층의 기억력 감퇴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나이가 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보통 나이가 드는 것을 자신의 능력이 약해져 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고, 또 실질적인 기억력 감퇴를 겪는다. 반면 중국의 노인들은 다르다. 중국 문화에서는 나이든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실험에서도 중국의 노인들에게는 기억력 감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젊은 사람과 같은 학습능력을 보였다. 모든 문화에서 노인들의 노화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콜레스테롤이 많은 소스와 (정제당이 들어간) 파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년까지 건강하고 날씬하게 행복한 삶을 누린다. 이 ‘비밀’을 캐기 위해 많은 연구가 행해졌는데, 현재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먹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아야 한다. 비밀은 바로 태도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음식을 사랑하고, 또 그 음식을 먹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태도라고 부른다. 만일 문화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전 우주에 걸친 상황이라면 그것은 법칙이 된다.

비록 인정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매일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상황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처럼 통쾌한 일은 없다. 우리는 그 상황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며, 시스템을 탓하고 신을 탓하고 부모를 탓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관찰하든 그것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 나의 삶 속에서 기쁨과 행복, 성취한 것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정확히 이런 것들에 대한 나의 초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뉴런이 인간의 뇌 안에서 연결되어 만들어 낼 수 있는 숫자는 전 우주의 모든 원자들보다 많다. 이 작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새가 바람에 날리는 가지에 앉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만일 계산이 가능하다고 해도, 가장 큰 슈퍼컴퓨터의 계산으로 며칠이 걸린다. 어쩌면 이것은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는 아무 문제없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늘 쉽게 내려앉는다. 전통적인 모델에서는 뇌를 전화기 숫자판이나 슈퍼컴퓨터에 비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를 들으면 투박하고 기계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 뇌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뇌는 아주 생동적이며 창조적이며 유연한 기관이다. 또 우리의 요구에 기초하여 학습하고 이해하며 역동적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영화 작업을 하는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책과 관련된 강연을 하면서 마침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적 중독(혹은 집착)은 처음부터 모든 것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감정적 상태에 근거하여 현실을 창조하고 있었고, 내가 그 상태를 선택한 것은 나의 몸이 같은 경험/감정/화학물질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경험들은 낡은 경험과 오래된 데이터에 기초하여 나의 뇌에 자리 잡아 갔다.
그렇다면 이 감정적 중독 상태에서 더 높은 상태,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감정을 창조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감정을 ‘소유’할 것인가?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감정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감정이 나와 나의 선택에 더 이상 지배력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가 감정 상태를 선택하며 감정이 나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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