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어른이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뭔가에 열광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꾀어 어딘가로 데려가는 전설 속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열광하지 않게 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경이에 감탄하고, 발견과 창조의 기쁨에 예민한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호기심을 잃고 더 자주 통제하는 뇌에 지배당한다. 점점 더 관습과 규범에 종속된 채 밥벌이에 매달리는 나이 먹은 영장류의 둔중함에 빠져버린다.
우리는 살아봐야 한다. 나날의 삶이 희망을 배신한다 해도, 이 도시에 낭패를 당한 천사,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만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살아봐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살아야 할 가장 숭고한 이유다. 우리는 삶이라는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슴에 벼랑을 하나쯤 품고 산다. 나무가 제 속에 도끼를 품고 번개를 품고 살듯이. 벼랑을 품은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낫냐는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내는 것이다.
외로움의 본질은 타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기 안의 충만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자기를 바라봄이다. 외로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독일어 ‘einsam’는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외로움은 사람의 무리에 종속되지 않고 자의식의 주체로 꿋꿋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감정이다. 분명한 것은 외로움의 한 본질이 매우 독립적인 기질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 속에서 살 수 없지만 피로 속에서는 살 수가 있다. 피로는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고갈에서 비롯된 정신적 체감(體感)의 문제다. 피로의 출현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고 한없이 느리게 이어지는 것이다. 피로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지만 피로 때문에 불행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피로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말대로 “불행 가운데 가장 대수롭지 않은 불행”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란 대수롭지 않은 작은 불행들을 무수한 잎으로 매단 나무가 아닌가!
진부한 악에 기어코 빠지지 않은 갑과 을은 저마다 현실의 토대에 뿌리를 내린 귀한 ‘사람꽃’이다. 이 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향기를 풀어낸다. 궁지에 몰리더라도 그 어려움을 꿋꿋하게 감내하며 결코 야수로 변하지 않는 이 꽃들 사이에 사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집은 사람이 장소와 관련해서 겪는 경험들의 중심 공간이다. 어둠 속에서 불빛을 머금고 있는 집은 주거 공간이자 세속의 거친 노동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침묵과 평온으로 맞아주는 은신처다. 집은 존재의 요람이고, 나날이 이루어지는 삶의 의미를 갱신하는 자궁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토대를 이루는 근원 공간이다. 집은 피로와 수고로 고갈된 생명에게 약동하는 힘을 충전시키고, 덧없고 무미건조한 삶을 기쁨과 의미의 삶으로 탈바꿈시키는 거의 유일한 지상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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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_책 읽는 다락방J
책읽어주는남자 #책읽어주는라디오 #오디오북 E: hipuhaha@naver.com [책읽는다락방J]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장석주 시인의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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