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지난 가을, 재택근무를 변명 삼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죽어 썩자마자 잊혀지고 싶지 않으면 읽을 만한 책을 쓰거나 써줄 만한 일을 하라”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 앉아 써줄 만한 일을 찾기는 힘들고, 10년간 내 소셜 미디어에 올렸던 글 몇 개를 골라 에세이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50세가 되었으니 50개 꼭지를 골랐다.
최적의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른 뒤 선택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뿐이다. 나는 가슴의 소리에 의존하기에 결정에 대한 후회가 없는 편이다. 다만 가슴의 소리를 따른다는 건 무작정 꽂히는 대로 움직이라는 뜻이 아니다. 쿵쿵대는 흥분이 조금 잦아들 때 더 정확한 가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실패의 위험을 줄이는 고민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조언도 구해야 한다. 가슴의 결정을 두뇌의 분석으로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관둬야 할 때를 모르고 버틴 기억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성급한 결단을 후회한 적은 차고 넘친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을 잃었고, 많은 기회를 놓쳤다. 계속 새로운 일에 꽂힐 때마다 하던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했다. 완전한 목표를 세우고 중간에 멈추느니, 절반의 목표를 세우고 완전히 달성하는 쪽으로.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내자는 결심이었다. ‘절반의 성공’이란 대부분 구차한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꿔보지 못한 꿈과 가보지 못한 길과 누리지 못한 삶으로 가득하다.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 인생의 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말년을 병상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매주 세 번, 한 시간도 나를 단련하는 데 쓰지 않는다. ‘잘못 살았다’는 후회로 인생을 끝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러면서 하루 10분도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나를 아는 것은 밝음이요, 남을 이김이 힘이라면 나를 이김은 강함”이라고 했다. 남이 마신 술에 취하지 않고 남이 먹은 밥에 배부르지 않다. 건강하고 가치 있는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삶이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을 안 해도 되는 삶, 즉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는 삶이다. 물론 누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삶의 90퍼센트가 그칠 날 없는 싸움과 기다림, 의미 없는 행사와 목적 없는 모임으로 채워져 있다면 이는 재고할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응원해준 상계동 주민들과 당원들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맹자는 “벼슬을 하는 자는 직분을 다 못하면 떠나고, 꾸짖음을 맡은 자는 말이 안 통하면 떠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로지 내 역량의 부족을 꾸짖으며 국회를 떠났다.
리더의 조건은 개인이 아닌 시대가 정한다. 시대는 때로 혁명가 또는 관리자를 요구하고, 때로 엘리트 또는 서민을 선호하며, 때로 젊은이 또는 원로를 필요로 한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빠르게 또는 바르게, 우직하게 또는 똑똑하게, 보수적으로 또는 공격적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리더십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진화하되, 카멜레온처럼 이 흉내 저 흉내를 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내 개성과 역량이 시대정신과 경영 환경에 부합하면 직접 나서고, 그렇지 못하면 이에 적합한 리더를 선별해 일을 맡겨야 한다. 한비자는 “천하의 앞이 되려고 하지 않으므로 큰일을 할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다.
나는 물건에 관심이 없다. 미술을 좋아하지만 작품을 모을 생각은 없다. 음악 스트리밍을 이용하면서 수천 장의 CD를 모두 줘버렸고, 책도 매년 절반 이상 기부하거나 버린다. 자동차나 시계 따위에는 아예 무관심하다. 반면 나는 순간을 모은다.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 감탄과 실의, 함께와 홀로의 감상으로 가득하다. 모든 여정에는 여행자가 모르는 비밀스런 목적지가 감춰져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웠던 올해, 비록 새로운 목적지를 발견하는 기쁨은 없었지만 상상과 명상으로 평생 못 가본 마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작은 위안을 찾는다.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더 힘들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세월에 맡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삶의 위대함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음에 있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섬에 있다. 《중용》에 “남이 한 번 만에 한다면 나는 백 번, 남이 열 번 만에 한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해서 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나는 강인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았다. 그러나 강함보다 약함을 고민하는 자에게, 지식보다 무식을 염려하는 자에게 성장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렇게 노력하며 한 해를 보냈다.
프라이버시의 핵심은 자유와 존중이다. 인생에서 자유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돈도, 명예도, 심지어 생명도 자유롭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제대로 쓸 수도, 누릴 수도, 즐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사적인 삶의 테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또한 내 자유를 존중 받기 원한다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내 권리를 주장하려면 상대의 권리도 존중하고, 상대의 책임을 물으려면 내 책임도 이행해야 한다. 남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하는 이유다.
살면서 많은 소문에 시달렸다. 물론 좋은 소문은 거의 없었다. 근거 없는 의혹과 악의적인 댓글도 많았다. 그러나 때로 무시하고, 때로 감내하며, 내 삶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끔씩 참기 힘들 때는 더 심하게 고통받는 이들을 떠올리며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로도 한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처신은 남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에 대한 소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다. 남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언젠가 내 자유도 존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소명을 찾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다양한 직구와 커브를 뿌리고, 때로 데드볼도 던진다. 스스로 자초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예측하기 힘든 투구다.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불화 속에서 조화를, 난관 속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며 깨어 있어야 한다. 헨리 롱펠로우는 “모든 이에겐 세상이 모르는 비밀스런 슬픔이 있으며, 때로 우리가 차갑다고 부르는 이는 단지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내 비밀스런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평생 사랑에 의지하는 길뿐이다. 또한 우리는 단지 노력하는 것뿐이며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성공은 인간의 노력과 하늘의 축복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끝까지 치열한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소명을 찾기 위한 나의 노력은 아직 진행형이다. 내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주어진 소명을 다함으로써 세상을 떠날 때 ‘내게 주어진 이 귀한 인생, 정말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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