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말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의 부드럽고 곧은 심지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집으로 마음산책 ‘말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이력이 절정에 다다라 있던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모두 일곱 편의 대담을 담았다. 이 대담들이 단행본으로 엮인 건 처음이다. 이 대담들에서 그는 마흔 살에 소설가의 인생을 열어준 『나목』이며 그 뒤 출간한 작품들에 관해 속 깊은 문답을 주고받고, 작가이자 개인으로서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 경험들을 털어놓는다.
가족, 교육, 어머니에게서 받은 지대한 영향, 학창 시절, 도시와 시골, 가난과 계층, 그리고 남성의 삶과 여성의 삶. 그는 지금도 유효한 이런 주제들 앞에서 오랫동안 연마한 생각을 날이 서지 않은 편안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책속에서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고, 어머니를 표현한 인터뷰어인 고정희 시인의 말입니다. 딸인 저에게도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넘나들 수 없는 거리감으로 어머니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던 그 거리감이 어머니만의 개인주의였다는 깨달음이 오면서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사람에겐 감정적 독립이 가장 어려운 게 아닌가하는 것이 내가 지난해 불행을 겪고 난 뒤의 생각입니다. 흔히들 사람이 혼자 서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이라 하고 또 경제적 독립과 감정적 독립이 병행돼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나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거지요. 물론 소설가가 돼서 처음으로 내 능력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놓는 책보다 세칭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20판에서 30판 꾸준하게 팔리고 있어 결코 적은 수입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의외로 내가 감정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야 깨달은 점이다. 이런 내 심사를 헤아린 탓인지 사위들은 아들 못지않게 잘해주는 편이고 딸들도 함께 살자 극성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하는 데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나는 사실 ‘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합니다. 1975년에 일지사에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첫 창작집을 간행한 이후 스무 권에 가까운 작품집을 냈으니까 평균 1년에 한 권꼴로 작품을 써온 셈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축적된 에너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습작을 많이 한 것도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남다른 파란만장한 체험을 가졌다고 할 수도 없어요. 내 식구들마저 『나목』이 당선되기까지는 글을 쓰는지조차 몰랐으니까요. 단지 어려서부터 남의 작품을 읽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았고, 독서하는 버릇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반드시 자기 전에 책을 읽다 잠들곤 해요. 작품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소설에서의 자기 안목은 독서에서 얻은 것이고, 체험이 작품의 밑받침이 되고, 그리고 원고지 위에 쓰기까지 충분한 구상이 내 소설 쓰는 태도의 전부이지요.
내가 여자인 만큼 학력의 고하나 신분을 막론하고 여자가 당하는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요. 단지 문제의식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소설적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왔다고 할까요. 그중에서도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은 여성 문제를 인식하고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론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고 체험으로 썼다고 할까요. 지금까지도 나는 이성에 봉사하는 일은 잘 안 되고 있어요. 그냥 살다 보면 문학이란 게 본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본질적으로 억압받는다든가 서러운 계층, 그늘에 가려진 층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내 경우 결혼 생활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당하게 되는 경험 이전의 문제의식이 없을 수 없지요. 남자들이 여성 문제를 건드릴 때에는 여성을 자꾸 대상화하게 돼요. 그러나 여성은 체험만으로도 여성 문제를 잘 쓸 수 있다고 봐요.
사람들이 저를 페미니즘 소설가로 불러주는 것을 어쩔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앞으로 꼭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만을 다룰 생각은 없어요. 사실 제게는 지금까지 여성 문제 이외의 것을 다룬 경우가 더 많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여성 문제를 소설화하는 일은 제게 중요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원래 뭔가 쓰고 싶은 열정과 힘이 솟아올라야만 작품을 쓰게 되는데, 그 쓰고 싶은 열정과 힘을 솟아오르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에요.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부당한 여건이나 운명의 장난과 같은 것에 의해서 참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생겼을 경우, 이게 아니다 싶은 일들이 눈앞에 보일 경우 그것을 증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속에서 끓어오르게 되고, 그와 같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저는 글을 쓰게 됩니다. 여성 문제 역시 제게는 그 부당함과 억울함을 고발하고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젯거리로 와닿았고, 더욱이나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지요.
처음에 문학에 대해 매혹된 것은, 이런 데 밝히기는 뭣하지만 통속소설에 의해서였죠. 김내성의 무슨 소설이 좋았다는 말도 많이 털어놓지 않습니까? 누구라 해도 여러분이알 수도 없는 일본 통속 작가들의 작품이었죠. 소년·소녀 소설, 그러다 연애소설로 옮겨 가고. 우리가 좋아했던 일본 작가들 중에 요새 사람이 알 만한 사람은 아마 아꾸다가와 정도죠. 단편을 아주 깔끔하게 쓰고, 우리나라 작가로 치면 이상(李箱)하고 비슷하지 않았나 싶어요. 장편은 별로 본 게 없는데, 사람의 병적인 이상심리 같은 것을 주로 그렸어요. 아꾸다가와한테 반한 것도 후기죠. 처음에야 뭐, 누구라 해도 여러분이 모르는 작가들, 달콤하고 일본적인 독특한 걸 쓰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었죠. 연애소설 같은 거. 그러다가 일제시대 때도 많이 번역되었던 게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요새는 덜 읽는 것 같은데 지금은 뚜르게네프라고 하나, 그때는 일본 말로 쓰르게네프라고 했는데 그 사람 것도 많이 읽었어요. 서사시 같은 것도.
해방 후 몇 년 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들, 때론 인간 이하의 모욕도 받게 되고, 요새로선 상상도 못할 어떤 빈궁의 밑바닥에 떨어져보기도 하고, 또는 너무나 견딜 수 없는 인간관계에 휩쓸린다든가 하면서 인간의 밑바닥 생활도 해보았어요. 그러다가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그것이 기질이 아니었나 싶어요. 돈 꾸러 가서 안 꿔주면 나중에 부자가 돼서 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또 그것이 부자가 되게 하는 한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도, 거기서 구원이 됐던 건 내가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번 써야지 하는, 학교 다닐 때의 단순한 문학 애호가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생각이었어요.
며칠 전에 피천득 선생하고 점심을 했는데, 그분도 가톨릭 영세를 받으셨다고 해서 “어떻게 하셨어요?” 하니까 아름다워서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되레 좋더라구요.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다는 게 맞지 그 여자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떻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너무 억압하는 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애요.
내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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