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읍니다
박정윤
밥이 되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을 기획할 당시 유난히 편의점 도시락, 컵라면, 삼각 김밥을 들고선 사람들이 눈에 띄더군요. 한번은 강변 역 플랫폼에서 식은 김밥을 먹는 남자에게서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외로움은 감정일 때보다 눈앞에 드러날 때 더 시린 거구나 하고요.
먹는 게 대수냐고,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지만, 전 생각을 좀 달리합니다. 먹는 건,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니까요. ‘밥’엔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성분이 있어요. 그리움, 정, 지난 사랑의 기억들이죠.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게 맞아요. 영양도 있어야겠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게 더 중요할지 몰라요. 질 좋은 ‘밥’에는 영혼을 살찌우는 재료들이 들어있죠. 엄마, 아빠, 동생, 누나, 형, 친구들이 그 재료들이고요.
밥이 되는 책이 있어요. 집을 떠나 격리된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 책이 갓 지은 밥처럼 그들의 밤을 뜨겁게 데워줬으면 좋겠어요.
책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었던 날이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시간과 그 공간의 기억을 마음에 함께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음식을 했다. 음식에 담은 마음을 가슴에 담아 부디 따뜻함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이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헌사 中》
그는 어디로 갈지 갈피를 못 잡고 골목에 멍하니 서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쓰러지듯 앉았다. 손님의 기분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주인 할머니는 낡은 테이블 위에다 된장찌개가 담긴 냄비를 조심성 없이 내려놓았다. 된장찌개가 냄비에 가득 담긴 것을 보면서 다른 때 같았으면 후한 인심에 감사했을 텐데 그날은 후회가 되었다. 좀 더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면 초라한 기분이 덜했을 텐데. 수저를 들어 된장찌개를 한술 떠먹었다. 그는 처량하고 애처로운 마음을 찌개에 적셔서 먹고 또 먹었다. 수저를 들어 올릴
때마다 두부, 호박, 양파, 고추, 대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된장이며 두부며 호박이며 양파며 고추며 대파도 본디 제가 있던 곳이 있었을 텐데 그곳을 떠나와 한 그릇 안에서 만나 서로 엉켜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의 만남도 된장찌개 안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과 같은 만남으로 각자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서로의 삶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 엉키고 엉켜서 더 이상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된다.
《구수한 그리움을 한가득, 된장찌개 中》
어느 해 겨울 동짓날 밤은 할머니 집 너른 마당에 소리 없이 새색시처럼 하얀 눈이 검은 밤 위로 한 겹씩 쌓이고 있었다. 문밖에 소복하게 쌓이고 있는 눈의 하얀 냄새가 방 문틈으로 스며들어왔다. 깊은 밤만큼 깊은 잠결에도 그 냄새와 옅은 바람은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쌓이던 눈이 그칠 즈음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 위를 맨 처음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밟고 오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검은 밤을 훤히 비추고 있는 것은 마당에 한 뼘 만큼 쌓인 흰 눈이었다.
그렇게 하얀 눈이 비추는 길을 길잡이 삼아 늦은 밤을 걸어오셨던 아버지
《뜨거운 사랑, 동지 팥죽 中》
“살 것 같아.”
맛있게 먹고 있는 딸을 바라보고 마주 앉아 있는 순간이 뜨겁고 매운 어묵탕 같았다. 너무 매우면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찔끔 날 때처럼 가슴 밑에서부터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지쳐서 기운 없이 돌아온 딸이 매운 어묵탕을 맛있게 먹고 잃어버린 기운을 찾아 다음 날은 힘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기를 바랐다. 늦은 밤 엄마의 수고는 수고가 아닌 기쁨이며 보람이었다는 것을,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들고 지치는 많은 날들에는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이 있어서 몸도 마음도 빵빵하게 부풀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기운이 북돋기를.
《스트레스를 날리는, 매운 어묵탕 中》
사람의 몸도 마음도 너무 지나치게 자극을 많이 받으면 쓰리고 아프다. 쓰리고 아픈 몸과 마음이 다시 회복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죽을 또 끓여 먹여야 될 것 같다.
《말캉짭조름, 궁중떡볶이 中》
지금보다 더 엄마의 음식을 못 먹게 되더라도 늘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할 것이다. 엄마에게서 나던 음식냄새가 두고두고 엄마 품처럼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늘 이야기하듯이 그 순간이 우리에게도 기억으로 남아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 엄마에게 세상의 모든 따뜻함을 안겨주고 싶다. 아픈 시간은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예쁜 우리 엄마 얼굴에 눈물보다는 웃음이 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
《막내아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음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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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집밥이 그리워지는 "음식 에세이" 【 밥을 짓읍니다 / 박정윤 】 리뷰
이 책은 저자의 삶을 거쳐간 음식들을 한 챕터에 한 두 개씩 담아놓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단편적인 음식에 그치지 않고 계절별, 상황별 요리 추천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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