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감각
로저 니본(Roger Kneebone)
우리는 매일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 일에서 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누구나 품는다. 과연 어떻게 하면 초보를 떠나 장인의 자리까지 갈 수 있을까?
여기 그 과정을 눈앞에 선명하게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외과 의사로 일을 시작해 20여 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에 재직 중인 로저 니본 교수. 그의 연구 분야는 ‘전문가 되는 법’이다. 그는 의사, 조종사, 자수장, 재단사, 박제사 등 여러 직종 전문가들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모든 장인이 거치는 보편의 여정을 ‘도제-저니맨-고수’라는 3단계 지도로 펼쳐 보인다.
이제 일을 시작한 ‘도제’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른 채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겪는다. 그러다가는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는 ‘수감 생활’로 접어들어 지루함과 싸운다. ‘저니맨’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과 충돌과 타협을 거듭하며 나름의 감각을 키워나간다. ‘고수’는 바야흐로 일과 자아가 일체가 되는 수준에 이르러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책은 의사로서 저자 자신의 경험을 씨줄로, 다채로운 분야의 다양한 고수들을 곁에서 관찰하고 분석한 내용을 날줄로 엮은 ‘일의 보물 지도’ 같은 책이다.
돌의 무늬와 재질을 손으로 읽어내는 석공, 앞의 자동차보다 관객의 시선을 읽는 카레이서, 어느 부분이 막혔는지 소리로 읽는 배관공, 찌의 움직임보다 물을 읽는 낚시꾼, 모두는 일의 감각을 몸으로 익힌 고수들이다. 저자는 누구나 ‘고수 되기 여정’을 따라가면 일의 감각을 몸에 익혀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지 고수들이 이뤄낸 결과물에 감탄하기보다, 그 과정에 주목하는 다정한 위로의 책이자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응원의 책이다. 무엇보다 ‘도제-저니맨-고수’ 그 여정의 어딘가에서 늘 제자리인 듯 헤매는 우리 모두를 위한 희망의 책이다.
책속에서
고장 난 난방 장치를 수리한 나이 든 보일러공 이야기와 같다. 보일러공은 난방 장치를 수리하기 전, 고객에게 질문을 몇 개 던진다. 그리고 장치에 귀를 기울이다가 작업복에서 망치를 꺼내어 파이프 하나를 세게 친다. 그러자 난방 장치가 다시 작동한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이었는데, 그는 고객에게 80만 원을 청구한다. 화가 난 고객은 망치 한 번 쓴 일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며 보일러공에게 항목별로 금액을 청구해달라고 요구한다. 보일러공은 대답한다. “망치 사용값 8만 원. 어디를 두드려야 할지 아는 값 72만 원.”
팡히오는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1950년 모나코에서 열린 경주 초반, 다중 충돌 사고가 났다. 팡히오는 선두 그룹에서 다른 차량보다 한 바퀴 앞서서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서 사고가 났고, 방향을 틀 코너가 보이지 않았다. 치명적인 차량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팡히오는 충돌한 차들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속도를 줄였다. 그의 차는 사고 차량에 닿기 직전에 정지했다. 나중에 사고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는 경주를 준비하다가 1936년의 비슷한 사고 사진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팡히오는 감속 유도 곡선 구간을 빠져나와 사고가 난 구간을 향해 가다가 관중의 안색이 창백해진 사실을 눈치챘다. 관객은 팡히오가 다가오는 쪽이 아닌 다른 쪽을 보고 있어서, 그에게는 관중의 뒤통수가 보였다. 팡히오의 차보다 앞쪽에서 일어난 일이 관중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사고 사진이 기억난 팡히오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고, 충돌 직전에 멈추었다.
모두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드라이버 대부분이 엄청난 속도로 트랙을 달리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 그 짧은 순간에 팡히오는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고, 정보를 처리하고, 이해하고, 조치했다. 이후 팡히오는 이 사건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내가 볼 때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적응적 전문성을 발휘한 것이다.
도공은 손과 손가락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한다. (...) 덩컨이 작품을 계속 수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신체가 재료와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는 진흙이 너무 건조하거나 부드럽거나 질면 바로 안다. 직관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 진득함을 해석하려면 끊임없는 연습으로 비축된 내면의 도서관이 필요하다.
빌은 내가 저지른 실수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 실수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내가 더 나은 비행사가 되려면 기가 죽어 다시는 비행을 하지 않기보다는 그런 경험을 활용해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세라가 두려운 것은 통증도, 죽음도 아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혼자 있는 일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가족이 어떻게 될까 걱정한다. 이 이야기를 하느라 대부분의 진료 시간을 보낸다.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 의학 지식이 아니라 대화할 시간이다.
임기응변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비전문적이고 순간적으로 짜낸 해결책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널빤지와 벽돌을 재료 삼아 임시변통으로 만든 책장이나 비가 내리는 날 급히 만든 쉼터를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임기응변은 소중한 기술이다. 빗속 쉼터는 급히 만들었을지 몰라도 사람들을 비로부터 보호해준다.
나는 우리가 모두 전문가가 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능력을 알든 모르든 간에 그 가능성이 있다. (...)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고, 관심 있는 일을 하며,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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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고수가 되는 법 | 세 가지 일의 감각
책 '일의 감각'을 소개합니다. 고수는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미장플라스를 갖추죠. 수감 생활을 거치며 지루함 속에서 기술을 만들어내고, 재료의 한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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