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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Ken Krim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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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Ken Krim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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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너무 빨랐다. 너무 분노했다.
너무 똑똑했다. 너무 어리석었다.
너무 정직했다. 너무 의기양양했다.
너무 유대인다웠다. 유대인답지 못했다.
너무 사랑이 넘치고, 증오가 넘쳤으며,
너무 남자 같은 반면, 충분히 남자 같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라는 인간의 일생이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잃어버린 나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태어난
이 난민 철학자이자 사상가의 이름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그리고 처음 떠오르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이 사람은 왜 철학을 포기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의 사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가?

- 서문 중에서

나흘째가 되자 검은 유리창 아래서 헛소문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마침내 합리적인 논쟁을 벌이며 함께 대화를 이어갈, 지각 있고 진실만 말하는 상대를 찾아냈다. 나 자신이었다.

‘한나, 이건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야.’
‘아니야, 한나.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인종이야.’
‘왜 그렇지?’
‘이 사람들은…적에 의해서…강제수용소에 갇혔고…’
‘이번에는 동지의 손에 의해…포로수용소에 갇혔어.’
‘아주 좋은 지적이야.’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써댔지만, 가짜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내가 가짜 포에니 전쟁을 벌인지도 3년이 지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독일의 방어선의 안쪽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처음으로 흘러나왔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집단 처형이 이루어진다는 단편적인 소식들이 신문지면을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더 테이번의 단골들은 물론이고 블뤼허도, 심지어 나까지도 그런 소문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1943년 여름, 대량 살상 공장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
심연의 문이 열렸다. 이전과 이후 사이에, 과거와 현재 사이에, 그때와 지금 사이에 매울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겨버렸다. 우주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어떻게 내 사랑하는 독일어가 가스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끙끙대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나은 결과물이 괴테와 쉴러의 언어를 확장시켜 지구 전체를 없애버릴 만한 기계를 탄생시켰다. 독일이 무너지며 원자 폭탄 제조 계획도 무산됐다. 하지만 좋은 발명품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무시무시한 원자 폭탄으로 2나노초 만에 일본의 도시들을 불바다로 만들어 전쟁을 마무리 지었고, 그로 인해 심연은 더욱더 깊어졌다.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전통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 못 본 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해해야만 했다. 답을 찾아야만 했다. 이 세상의 무언가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를 위한다며 동족상잔을 일으키게 했고, 다른 인간을 매립지에 묻어버리게 했다.

기존의 이론들은 묵묵부답이었기에 나는 나의 덤불 속으로 돌아갔다. 벤야민이 어떻게 작은 세부사항을 붙들며‘진주를 캐려고 뛰어들었는지’떠올리며 심연의 근원을 추적하려 애썼다. 이런 잿더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철저히 집중해서 나치 독일뿐 아니라 스탈린*의 러시아에서 어떤 지옥이 펼쳐졌는지 보여주는 로드맵과 경기 전략을 제시해야 했다.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니만큼 당연히도 이를 묘사할 단어는 없었다. 내가 단어를 만들어내야 했다.
지구상에서 새롭게 발생한 이 힘의 이름은…전체주의였다.
불이 산소를 연료로 살아간다면, 전체주의의 산소는 거짓이었다. 전체주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거짓말에 맞춰 현실을 조작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무자비한 경멸의 메시지를 내놓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절대적으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힘에 달려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내 글과 사유와 관찰이 모두 담긴 576쪽 분량의 책이 세상을 뒤덮었다. 나치와 ‘공산주의자’를 동시에 비판한 나는 제리 루이스, 미키 맨틀과 함께 전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 시민권까지 얻게 됐다.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은 아니어도 ‘프린스턴대학 최초의 여성 정교수’로 <뉴욕타임스>에 소개되었다.

‘내가 프린스턴 최초의 인간 정교수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지? 그리고 내 사진을 좀 더 크게 실으면 어디 덧나나?’

법정에 들어간 나는 유리 상자 안의 남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맹목적이고 단조로우며 관료주의적인 그의 태도와 일치했다. 목격자와 피해자들이 줄줄이 증언하는 동안, 나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가 뒤틀려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짚으로 만들어진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를 묘사하려면 기사에서 감정과 연극적인 태도를 최대한 절제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을 공격하고, 동시에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베를린 동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배운 빈정거림과 반어법, 건조한 표현, 풍자 등에 의지해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유리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이 괴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출세지향적인 전직 청소기 판매원이 따분해하며 알맹이 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프랑켄슈타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서 오히려 그가 저지른 범죄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이히만을 사악한 괴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 잠재적인 죄를 짓게 되지. 철저하게 사유하지 못한 죄. 슬픈 진실은 선과 악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사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거야.’

기억에 남는 문구

슬픈 진실은 선과 악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사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