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강물 이쪽 언덕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흉악한 범죄가 되고, 저쪽 언덕에서는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 나는 도박죄의 재판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드오. 똑같은 도박인데도 카지노에서 몇 십 몇 백만 원이 오가는 것은 죄가 안 되고, 품팔이꾼인 저들이 시골 농한기에 점심내기나 술추렴을 한 것은 엄중한 범죄가 되오. 거기다가 판검사 낀 사회 상류층에서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마작이나 포커판도 보통은 이들 판돈의 두 배는 넘소. 횟수도 이들보다는 잦아요. 그러나 판돈 몇 백 원에 석 달에 걸쳐 열한 번 한 저들은 상습 도박이 되고 상류층인 그들에겐 그저 오락일 뿐이오.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 가족이 겪어야 할 굶주림과 추위를 생각하면 내가 법관이 되지 못한 게 다행으로 여겨지오.”
-「어둠의 그늘」
나는 종갑 씨가 무엇 때문에 이미 죽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열렬히 그녀를 찾아 헤매었는가를 물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물음을 끝맺기도 전에 문득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어쩌면 종갑 씨가 그토록 열렬히 찾아 헤맨 것은 옥선이가 아니라 그녀를 통해 언뜻 접하였던 이조 풍류의 잔영(殘影)이 아니었을는지. 그리하여 스러져가야 할 것이기에 더 아름다운 그것이 알지 못할 향수로 그 고독한 영혼을 일생 동안 내몰았던 것이나 아니었던지.
-「방황하는 넋」
금시조가 날고 있었다. 수십 리에 뻗치는 거대한 금빛 날개를 퍼득이며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갯짓에는 마군(魔軍)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없었다.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세일 뿐이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거룩함의 얼굴에서는 여의주가 찬연히 빛나고 있었고, 입에서는 화염과도 같은 붉은 꽃잎들이 뿜어져 나와 아름다운 구름처럼 푸른 바다 위를 떠돌았다. 그런데 그 거대한 등 위에 그가 있었다. 목깃 한 가닥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금시조가 두둥실 솟아오른다. 세찬 바람이 일며 그의 몸이 쏠려 깃털 한 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점점 손에서 힘이 빠진다. 아아……. 깨고 보니 꿈이었다.
-「금시조」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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