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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생각의 시대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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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김용규

인문학의 연금술사',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로 불리는 김용규의 신작. 저자가 이번에는 ‘생각’에 주목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 사이, 그리스에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류 문명을 탄생시킨 ‘생각의 도구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졌던 것. 그 생각의 도구들은 그 당시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매던 그리스인들에게 황금기를 가져다주었고 더 나아가 서양 문명, 아니 인류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 ‘생각의 도구들’은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였던 것이다.

저자는 <생각의 시대>에서 바로 그 생각 도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한다. 남다른 생각 하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바로 지금, 늘 새로움을 창안해야 하고 한발 앞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개개인들에게 이 책에 소개된 생각 도구들은 반드시 익혀 사용해야 할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더 나아가 인류사적으로도 우리는 근대 문명을 낳은 ‘근대적 이성’의 무능함과 폭력성을 넘어서야만 하는 과제를 눈앞에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그 해답이 바로 ‘생각’에 있다고 말한다. 세계대전과 대량 학살, 차별과 증오를 낳은 근대적 이성을 대신할 ‘부드럽고 유연한 이성’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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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제 학습을 통해 자신의 시대까지 누적된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에 의존하여 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누가 어떤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관건이 아니다. 그것들은 네트워크 안에 넘쳐나는 데다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수명마저 짧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해법은 없을까? 지식의 폭증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각자의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에 손쉽게 이를 방법이 없을까? 지식의 네트워크화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합목적적인 지식뿐 아니라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가질 수는 없을까? 격변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적합한 지식들을 창출해내는 사고능력을 획득할 수는 없을까? 그럼으로써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고, 당면한 시대뿐 아니라 다가오는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능력을 기를 수는 없을까? 요컨대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없을까? 이 책이 답하려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_머리말 중에서

축의 시대를 거치면서 (달리 말해 자연과 도덕의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인간은 드디어 ‘이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인간의 전체적 변혁을 야스퍼스는 ‘정신화vergeistigung’라고 이름 붙였다.27 인간이 비로소 정신적 존재로 변했다는 뜻이다. 뒤에서 뇌신경과학을 통해 차츰 드러나겠지만, 이것은 인류의 뇌에 새로운 신경연결망이 구축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인류가 그 이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몰두했던 ‘아르케’와 ‘아레테’에 관한 탐구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호기심’ 내지 ‘경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게 하는 힘, 곧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욕망에서 시작했다. 설령 우리가 철학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경이심thaumazein’에서 나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깊은 바닥에는 그 같은 절실하고도 은밀한 욕망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_제1부 지식의 기원 중에서

호메로스는 이야기 전체에서 주제에 끼워 맞추어지는 것만을 작품에 담고, 그 밖에 모든 것들은 간략하거나 아예 생략했다. 호메로스의 이러한 작품 스타일 덕분에 나중에 서양 문명의 본질까지 발전한 사고, 즉 ‘개별적인 사실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이끌어내는 사고’가 그리스에서 맨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자연을 이해하여 조종하고 인간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보편성에 대한 기나긴 탐구가 비로소 시작됐다. 호메로스는 사물들에는 공통성이, 사건들에는 원인과 결과가, 세상에는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일리아스』는 감정과 충동에만 사로잡혀 살던 아킬레우스가 절제와 이성을 갖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나긴 성장기로 볼 수 있다. 또한 바로 이 점에서 보면, 『일리아스』는 그리스인들이 그들 스스로를 전제군주 밑에서 전쟁과 약탈을 일삼는 야만인barbaros들과 분명한 선을 긋고,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폴리스의 시민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호메로스의 선언으로도 볼 수 있다.

_제2부 생각의 기원 중에서

우리가 시를 읽고, 낭송하고, 외운다는 것은 단순히 감성적 취향을 고양시키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뇌 안에 은유를 창출하는 신경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이다. 누구든 우리 시(또는 동시)를 자주 낭송하고 모두 외우고 나면, 그의 뇌 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재의 표상’으로 지목한 은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신경망이 형성된다. 그 결과 (경험을 통해 단언컨대) 말과 글의 표현력이 점차 달라지고 설득력이 높아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창의력도 발달할 것이다.

하나의 은유가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사유 체계 전체를 보여준다! 마이더스의 ‘손’, 이카로스의 ‘날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수많은 신화적 은유에서 ‘손’, ‘날개’, ‘침대’와 같은 이미지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자신의 사상을 이미지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능력은 탁월한 학자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플라톤의 ‘동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 데카르트의 ‘전능한 악마’, 다윈의 ‘생명의 나무’, 니체의 ‘유희’,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프로이트의 ‘말馬’, 마르크스의 ‘유령’, 하이데거의 ‘숲길’, 하이에크의 ‘미끄러운 경사길’과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문적 은유들을 보라! 요컨대 천재들은 자신의 사상을 은유를 통해 선명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것이 그들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다.

_제3부 1장 메타포라metaphora, 은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