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첫 산문집. 세계 각국의 신화와 종교를 두루 섭렵한 작가가 인간 영혼 깊은 곳에서 건져올린 아름다운 우화, 작가 자신의 일상과 코엘료 문학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열쇠 같은 글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감동적인 일화들을 담았다.
이 책은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아닌 자연인 파울로 코엘료를 보여준다. 일 년의 절반은 고향에서, 절반은 프랑스 피레네 지방의 시골마을의 방앗간집에서 보내는 그의 일상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누엘 반데이라, 조르지 아마두 등 그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 글들도 담겨 있다.
이미 작가라는 ‘자아의 신화’를 살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가 일상에서 건져올린 지혜와 예술의 경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 연대하여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첫 산문집에 담았다.
책속에서
“자넨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하게 사는가?”
마누엘이 대답한다.
“책임감 때문이지요.”
천사는 다시 묻는다.
“하루에 십오 분만이라도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상과 자네 스스로를 돌아볼 수는 없나?”
마누엘은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나.” 천사가 응수한다. “누구에게든 시간은 있네. 용기가 없을 뿐이지. 노동은 축복일세. 그것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나 일에만 매달려 삶의 의미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저주야.” - 본문 중에서
나는 건강 체조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 하지만 이제 나는 규칙 때문에 정작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칼로리를 소모하고, 근육을 움직이고, 척추의 특정 부위를 사용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 인간들은 매사 규칙을 만들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 '규칙보다 중요한 것' 중에서
나는 배운 것을 모두 잊기로 했다. 요즘 우리는 스틱을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우리 몸이 작동하고, 반응하고, 균형을 잡는 걸 느낀다. 산행 길의 명상이 아니라 건강 체조를 할 요량이면 헬스클럽으로 가면 된다. 요즘 나는 내 방식대로 노르딕 워킹을 하며 긴장을 풀고 행복을 느낀다. 칼로리를 46퍼센트 더 소모하지는 못하더라도.
거룩한 번역가라니!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 거룩한 번역가들의 수호성인. 나는 손에 꽃을 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책을 손에 쥐고 있을 사람들, 내가 독자들과 나누려는 바를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번역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 장인이자 번역가인 크리스티아노 몬테이로 위티시카를 생각했다. 이제는 성 메스롭과 함께 저세상에 있을 장인어른은 지금 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장인어른이 낡은 타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턱없이 낮은 번역료에 대해 탄식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안타깝게도 번역가들의 열악한 여건은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신이 번역을 하는 것은 당신의 지식을 타인들과 나누기 위해서고, 그것은 번역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나는 장인어른을 위해, 그리고 내 책을 번역하는 모든 번역가들을 위해, 내 삶과 개성을 다듬어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할 책들을 독자들의 손에 쥐여준 이름 없는 그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 '바벨탑의 저편' 중에서
나는 오랜 세월을 나눈 남편의 운명을 알고 난 후 그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했다.
사내를 위해 조용히 기도를 올리자. 그리고 친구의 소중함을 돌이켜볼 기회를 준 그에게 고마워하자. - '파자마를 입고 죽은 남자' 중에서
그리고 다시 파자마를 입고 죽은 남자를 생각했다. 찾는 사람도 없이, 이십 년 동안이나 종적이 없었던, 그 완벽하고 철저한 고립에 대해. 배고픔이나 갈증, 실업이나 실연의 상처나 절망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느 누구도, 세상의 단 한 사람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리라.
피아니스트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여전히 모차르트의 천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두 명의 청중이 생긴 것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 여기서는 아무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 신조차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신은 듣고 있었다. 신은 피아니스트의 영혼과 손에 현존하고 있었다. (…)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깊은 경외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일깨워주었다. 우리 각자에게 실현해야 할 신화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타인이 우리를 믿어주든 말든, 비판하거나 무시하거나 봐주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그것을 수행한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소명이고, 모든 기쁨의 원천이므로.
피아니스트는 모차르트의 다른 곡으로 연주를 마무리했고,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는 우리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우리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만의 낙원으로 돌아갔다. 그를 그곳에 남겨두는 게 최선이리라. 어떤 세속적인 것도 닿지 않는, 심지어 우리의 수줍은 박수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그곳에. 그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왜 내 일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그를 떠올리자. 그는 연주를 통해 신과 대화했고, 그 순간 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 '쇼핑몰의 피아니스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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