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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긴즈버그의 말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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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마음산책 열세 번째 말 시리즈. 법률가로서 평생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온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상과 신념이 담긴 법정 의견서와 언론 매체, 강연, 포럼 등에서 했던 말을 총 망라해 긴즈버그 언어의 정수를 담았다. 책 말미의 「연보 및 주요 사건」은 긴즈버그가 참여한 법정 사건들을 연도별로 자세히 수록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1970년대부터 긴즈버그는 법률가로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와 협력해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하면서 특히 젠더 차별과 관련한 소송 사건들을 맡아 판례를 바꿔나가는 전략으로 차별을 크게 개선해 나간다. 연방대법관에 오른 후에는 남성 입학생만 받던 버지니아군사대학교에 여성이 지원할 기회를 최초로 여는 판결을 내리고(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사건) 남성 동료보다 임금이 적었던 여성 노동자를 위해 반대 의견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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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머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여자아이라면 의사건 변호사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자유롭게 하라. 남자아이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고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 역시 괜찮다. 페미니즘 개념은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모든 인권 관련 문서는 법 앞에 양성(兩性) 이 평등하다는 진술을 담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그렇지 않다. 내 딸과 외손녀, 그 후에 올 모든 딸들을 위해 나는 그 진술을 우리 정부의 근본 통치 수단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싶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효율적인 판사는 …… 권위적으로 말하는 대신 설득하려고 노력 한다. 상호 동등한 정부 부서와 주 정부, 법원 동료들을 비난하는 대신 “온화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간다.

과한 여담이나 미사여구 없이, 또 의견이 다른 동료들에 대한 산만한 비난 없이 올바른 동시에 단단한 의견을 내는 것이 한결같은 나의 목표다.

나는 대단히 적극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오백 명 남짓한 정원에 여학생이 아홉 명인 로스쿨에 입학했다. …… 우리는 교실에서 질문을 받으면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유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스스로도 그랬지만, 교수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로스쿨 여학생들이 다 그렇지요, 뭐.” 그래서 우리는 주목을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 여성들도 법률가로 성공할 모든 자질을 갖췄음을 남학생과 교수 들에게 일깨워주는걸 우리는 일종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형제들이 베르겐·벨젠을 비롯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느꼈던 공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정의로운 사람에게 증오와 편견은 좋은 심심풀이도, 걸맞은 친구도 아님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1837년에 …… 유명한 노예 폐지론자이자 양성평등주의자인 세라 그림케(Sarah Grimke)는 …… 우아한 목소리가 아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여자가 말하면 다들 귀담아듣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자가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좀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나만 겪은 특별한 경험도 아니다. 고위직 여성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그들도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태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자리 잡게 된다. 그 태도는 1950년대 초반 어느 대학 도서관 열람석에 새겨진 낙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낙서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열심히 공부하라, 좋은 성적을 거둬라, 학위를 받아라, 결혼하라, 아이 셋을 낳아라, 죽어라, 그다음 땅에 묻혀라.” 첫 문장만 봐서는 이 글을 쓴 사람의 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두 번째 문장에 이르러서는 여성이 이 글을 썼다는 걸 모르기란 불가능하다. 이 글을 쓴 젊은 여성을 비롯해 그녀 같은 수많은 다른 여성들이 너무도 민감하게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은 성별을 기능적 설명을 위한 약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법은 모(母)가 아닌 부모(父母)를 다루어야 한다. 주부가 아닌 가사 담당자를 다루어야 한다. 과부가 아닌 생존 배우자를 다루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빈곤층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여성은 교육 수준과 경력이 비슷한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터는 출산 및 양육과 관련된 요구 사항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과 가정 폭력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도 강구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을 구성 하는 모든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는 쪽으로 계속 사회가 나아갈 것으로 나는 낙관한다.

수많은 모욕이 가해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풍경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내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닐 때였다. <로리뷰> 발간에 참여하던 터라 라몬트도서관에 정기 간행물을 보러 갔다 …… 정문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못 들어가요.” “왜 못 들어간다는 거죠?” “여자니까요.”

(어머니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숙녀가 되어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라. “숙녀가 되라”는 것은 분노처럼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감정에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그러나 …… 편향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사람들을 세뇌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나 자신을 중립적인 사람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여야 할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의 언어로 세상을 바꿨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왜 생활의 장에서 실천되지 못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관행으로 굳어진 뿌리 깊은 차별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 자신이 여성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특히 사회의 성차별적 관행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성공의 기록을 쌓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법의 논리와 철학, 그리고 언어로 세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곳으로 바꿔나갔다.
-이다혜(<씨네21> 기자, 작가), 「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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