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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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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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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앤의 그 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의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아주 특별한 능력>

머리카락이 초록색이 되고 나서야, 앤은 자신의 빨강머리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조금씩 너그럽고 상냥하게 키운다고 말이다.
- <우연을 기다리는 힘>

소설가 ‘백모’가 아니라 ‘백영옥’이어서 다행이다. 앤의 이름이 그때 만약 ‘코딜리어’로 바뀌었다면 우리는 ‘빨강머리 앤’이 아니라 ‘빨강머리 코딜리어’라고 읽었겠지. 뭔가 이상하다. 역시 앤 쪽이 친근하고 더 좋다.
- <나와 포옹하는 법>

이제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멸의 역작을 쓰길 바라기보다,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매일 쓰고, 매일 읽는 사람이게 해달라고 말이다.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영화 <희생>에서 말한 것도 그런 것이다. 화장실 변기 안에 물 한 컵을 붓는 사소한 행위조차 매일 하는 것에는 신성함이 깃든다.
- <아침이라는 리셋 버튼>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진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 <고독을 좋아한다는 거짓말>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 자체로 반짝인다. 그래서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열일곱 살짜리 누나를 좋아하는 마음이나, 일흔넷의 할머니가 노인정에서 삼각관계에 휘말린 이야기를 들으면 어쩐지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망측, 주책, 주접 같은 말은 사랑에 붙이는 주홍글씨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나이나 인종, 성별의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이외의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이다.
- <우리는 전직 어린이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건 모진 세상을 살면서 쉬어갈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의미일 테니까.
- <내 마음의 안전지대>

<빨강머리 앤>은 앤의 성장기이면서, 마릴라의 양육일기이기도 하다. 아이 앞에선 매일 실패만 하는 많은 엄마들처럼 그녀 역시 실수하고 실패하는 엄마인 셈이다. 언제나 기상천외한 실수를 하는 앤 못지않게, 잦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마릴라의 모습을 보는 게 참 좋다. 아이의 성장기보다 이제는 아줌마의 늦은 성장담이 내 마음을 더 잡아끈다.
- <마릴라의 엄마 수업>

내게 있어 여행이란 끝없이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내게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 앤에게 마릴라와 매튜가 있었던 것처럼.
- <여행이란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

새로운 실수를 한다는 건 부주의한 탓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새로운 실수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앤의 말처럼 중요한 건 한번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지, 실수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닐 거다.
- <넌 내일도 실수를 저지를걸?>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잘 안 되는 거다. 중요한 건 실수를 자기 몫으로 감당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만 하는 특이한 실수가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되기도 하니까. 못하는 걸 잘하려고 자책하며 노력하는 일보다, 잘하는 걸 조금 더 잘할 수 있게 정성을 쏟는 일이 어쩌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 <넌 내일도 실수를 저지를걸?>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에서의 외로움은 조금 더 증폭돼 내게 고독의 형태로 다가와 있었다. 내가 선택한 건 24시간 연결이 아닌 타인과 단절된 채,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였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건 행복이 아니라 다행스러움이었다. ‘무엇을 할 자유’가 아니라,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며, 나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이곳까지 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외국인 친구에게도 정이 흠뻑 드는 나이가 10대와 20대가 아닐까. 쉽게 마음을 열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더 쉽게 상처받는 나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이 말이다. 하지만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란 말의 본래의 뜻은 ‘누구와도 쉽게 헤어질 수 있다’란 말과 같다. 그 말을 이해할 즈음의 어느 가을밤에는, 문득 청춘이 끝나버렸다는 걸 알고 좀 아득해지긴 하겠지만.
- <지금 이별 때문에 울고 있다면>

앤이 내게 물었어도 아마 같은 대답을 했을 거다. 이제 나는 ‘너의 꿈을 너의 직업으로 이뤄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업은 적어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본래의 직업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셈인 것이다.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존중하지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삶을 더 존경한다.
- <내가 하고 있는 일>

내 경우에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함께 있을 때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지 않아도 좋은 사람. 조금 더 정확히 말해, 함께 있지 않음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은 사람이 내겐 최고의 상대다.
- <사랑에 빠진 이유와 결별의 이유가 같을 때>

그러나 앤이 마음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는 건 그녀에게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징조다. 앤은 이제 침묵이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대화의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란 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에서 말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항상 제삼자가 듣기 마련이며, 그 제삼자가 바로 침묵이다.”라는 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 <침묵의 기술>

나는 내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하는 거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말보단, ‘변해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
변했다는 건 뭔가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얘기일 거다. 발음이 괴상한 외국어 배우기를 시도하고, 낯선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보는 것 말이다.
-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한다>

나비는 애벌레였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찬란한 날개를 펴며 나비가 된다. 그렇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다. 젊음이 인생의 처음에 놓여 있는 건 아무래도 인간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아닐까. 톨스토이의 말이 맞다. 내가 신이라면 나 역시 청춘을 인생의 맨 마지막에 놓겠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토록 푸릇한 청춘이 놓여 있다면, 삶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 <젊음을 삶의 맨 마지막에 놓을 수 있다면>

기억에 남는 문구

행복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의도록적으로 해야할 것은
'뭔가 하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하지 않기 위해' 때때로 멈춰 서는 것이다.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