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화했고, 현재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노골적인 차별이 아닐지라도 무의식적이고 교묘한 차별과 속박은 여전하다. 이런 과정을 여성 언론인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때론 답답하기도 했고, 나 또한 당장 명쾌한 답을 내거나 해결할 수 없으니 그저 가슴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해답을 얻었다. 울고, 싸우고, 다치는 것보다는 유연하게 설득하여 내가 원하는 결과,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네 긴 인생을 버티고 이끌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여성 기자에 대한 시선도 달랐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편이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한국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 기자를 더 신뢰하는 사회 분위기가 명확히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인 데다 나이가 어려 보이거나 경력이 짧은 기자는 상대하기를 꺼리는 취재원도 종종 접했다. 여자인데 어리기까지 한 상대를 ‘프로페셔널’로 인정하기 어려운 소셜 스티그마(social stigma), 즉 낙인효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한국에 돌아온 후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묘한 선 긋기의 감정이 항상 성가신 스트레스가 되었다.
-‘여성 기자로 산다는 것’ 중에서
나는 그런 준비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준비가 되어 있기에, 차별적인 언행에도 쉽게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속상해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오히려 낙후된 마인드를 가진 상대방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경고를 할지 응징을 할지 판단한다. 많은 풍파를 겪으며 멘탈을 단단하게 다지고 대응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계획하고 다듬어온 덕분이다.
-‘정색하기보다 웃으며 대응하라’ 중에서
아직도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만 난무하고 깊이 있는 토론은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대부분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정치적 소재나 빈부격차 등은 자주 다루면서 양성평등의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현실의 민낯을 공론화했고, 물론 그 속에서 혼란과 상처도 있었지만, 적어도 문제점을 인지하는 과정을 거쳤으니 새롭게 성숙해질 희망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중에서
여자라서 할 수 없을 거야,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 해, 여자가 이런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두려움은 그 자체로 인정하자. 그 위에서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일단 찾아놓고 나만의 건강한 욕망을 키워야 한다. 그 모든 자기 의심과 두려움의 폭풍을 뚫고 지나가게 될 때까지 열정을 마음속에서 비장하게 키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은 멋지고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이다.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깨라’ 중에서
일터에 갈 때는 애교는 집에 두고 오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태도와 첫인상이 얼마나 많은 것을 결정하는지 절감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자. 자각을 해야 고칠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관찰하는 건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좋다. 주변 사람이 여자와 남자를 대할 때 어떻게 다른지, 그 미묘한 차이를 관찰하여 타산지석으로 삼자.
-‘일터에서의 애교는 미덕이 아니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월급 200만 원 받는 여성이 월급에 맞먹는 보육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경력을 포기한다. 하지만 월 50만 원 정도로 이런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다면 경력도 쌓고 그 시간 동안 월급을 올릴 기회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보육시설을 늘려도 누군가 집에서 함께 먹고 자며 아이를 봐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따라서 나는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이는 것이 워킹맘들에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워킹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중에서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나의 모교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였던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가 2006년 어느 연설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워크맘이 될 수 있다면’ 중에서
“There is a special place in hell for women who don’t help other women.”
지옥에는 다른 여성을 돕지 않은 여성이 들어가는 특별한 곳이 있다는 것이다. 즉, 여성들끼리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실제로 201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잡지에 실린 연구 결과 논문을 보면, 1~3명 정도끼리 강한 유대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던 여성들에 비해 2.5배의 권력과 보수를 받는 지도자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자의 역할은 확대 해석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기자에게 바라는 사회적 역할 또한 과장된 것 같다. 기자가 사실을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하지만 대안 제시는 사회운동가나 정치인의 역할이고, 언론은 그런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해야 건강한 민주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중에서
기자는 감정에 휘말리면 안 되는 직업이다. 현장에 가서 끔찍하고 슬픈 장면을 봤을 때 거기에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공포가 엄습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정이 흔들릴 때 나는 얼른 감정의 벽을 친다. 그리고 현장 상황 속에 휘말려 감정을 이입하기보단 이성에 의지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내 눈앞에 지금 시체가 몇 구인지, 이들이 어떤 상태로 사망에 이르렀는지,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구조가 진행되고 있는지.
-‘죽음과 불운, 그 모든 삶의 리듬 속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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