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앉아 있던 저는 부모님이 겪었던 전쟁과 외로움의 고통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세상에서 중복장애인인 제가 겪는 고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인 사바는 내면의 힘을 키워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고 난민이 되어 그 힘든 탈출의 길에서 살아남은 거죠. 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안락한 고향 집을 뒤로 하고 낯설고 외로운 이국땅에 들어간 거고요. 그곳에서 타서 달라붙은 스파게티를 먹으며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운 거예요. 부당함과 불의에 맞서며 삶의 길을 찾은 어머니와 아버지. 저도 그분들처럼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싶었어요.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에, 항상 모르고 지나치는 게 많은 그런 세상에, 과연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을 거야. 장애를 지닌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는 게 없다고 단정해 버린 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까.
제 인생은 제가 살아가야 하는 저의 인생이죠.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에 제 인생을 맡길 수는 없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말리에 가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명을 거부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슨 주장을 하든지 무시해 버린 거죠. 차분하고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어쩌면 제가 제 생각에만 치우쳐 제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 능력은 제가 잘 알아요. 누구보다 더 잘 알아요.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마주치든지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대할 때 품게 되는 억측이나 가정 때문에 저는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었어요. 물론 저 역시 제 위주의 억측이나 터무니없는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말이든 생각이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옮길 때 우리가 빠뜨리는 게 있을 수 있어요. 성급한 판단이나 억측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해요.
저를 배려한다며 캐리가 보여 준 공손함과 정중함이 오히려 기숙사 룸메이트를 가장 친한 친구로 삼아야겠다는 제 꿈을 산산조각 내 버리고 만 거예요.
장애 차별적인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 지내는 일은 발도 떼기 힘든 찐득찐득한 진흙 속을 거니는 것과 같아요. 우리 사회에 장애 차별과 편견이 너무 깊이 스며 있는 바람에 장애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행동이 장애 차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아름답고 선한 행동으로 포장하는 게 보통이에요. 자신의 그런 〈선한〉 행동을 다른 사람이 칭찬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하지요.
요페트가 직접 두 눈으로 관찰한 것은 그 아이가 이 사회에서 배운 〈사실〉, 즉 시각장애인은 무능하다는 사실과는 분명 어긋나는 것이 틀림없어요. 관찰을 통해 알게 된 사실과 학습으로 배운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이 서로 모순되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대개는 둘 중 하나는 버리면서 조화를 찾게 되지요. 이게 바로 인지부조화 이론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사람들 대부분은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런 잘못된 인식을 거부하는 일-지배 담론에 맞서는 일-이 너무 힘들고 더 많은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요페트가 그런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길 원해요.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가장 규모가 큰 소수 집단이죠. 미국인 가운데 장애를 지닌 사람이 5천 7백만 이상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13억 이상이에요. 그러니까 기업들이 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사업 구상을 하게 되면 거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거예요. 접근 장벽을 제거하는 것은 또한 고용주에게 재능 있는 집단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테크놀로지가 장애를 지닌 사람과 비장애인과의 격차를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주고 있어서 앞으로는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더 많이 취업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믿어요.”
장애인 인권 옹호를 위해 일하면서 저는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인터넷 서비스, 온라인 비즈니스, 웹사이트, 앱 등 디지털 세상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면서도 저는,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평등을 위한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이 사실을 매일 상기하고 있답니다.
“버락 오마바 대통령: 여러분, 반갑습니다! (박수) 백악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 하벤, 대단히 인상적인 소개를 그렇게 멋지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당신처럼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 것에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자 여러분, 우리 모두 하벤에게 큰 박수를 보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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