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사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도 인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문명 교체로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살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생활 공간은 빠르게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기존의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다시 세워지는 과도기를 겪고 있었죠. 그 위기 속에 코로나19까지 덮친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문명과 디지털 문명이 서로 힘겨루기하는 모양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문명 체계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스마트폰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생활에 익숙한 ‘포노 사피엔스 세대’ 간의 갈등이 팽팽한 상태였죠.
1년 전 제가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새로운 문명이 도래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가능한 그 변화의 시기가 늦게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또 사회 시스템 전반으로도 지나친 변화를 경계하며, 규제를 통한 속도 조절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기성세대의 바람을 한 방에 쓸어가버렸습니다.
메타인지를 설명할 때 많이 나오는 질문이 이런 것입니다. ‘엘살바 도르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모르지’라는 판단이 서죠. 그래서 ‘몰라요’라고 즉각 대답합니다. 이것이 메타인지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면 어떨까요? 엘살바도르의 주요 도시를 검색하고 그곳의 인구수를 비교하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 우리 뇌처럼 신체 일부이고 검색이 허용되는 상황이라면, 나의 메타인지는 ‘그건 알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메타인지 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죠.
이것은 작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지식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학습 능력은 폭발적으로 향상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오랫동안 익숙하게 익힌 사람이라면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 역이 더욱 확대됩니다. 더 뛰어난 지적 능력과 성취도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검색할 줄 아는 능력과 검색을 통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알아내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지적 능력’이 됩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누군가에게 정해진 내용을 배우고 외우는 기존 학습 방식에 ‘스스로 찾아 학습하기’, ‘검색해서 알아내기’라는 새로운 영역의 학습 방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었고 친근한 소비재이자 동시에 역동적인 소비재는 바로 ‘음악’입니다. 음악의 소비 패턴은 가장 빠르게 변화합니다. 음악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는 추이를 보면 미래의 소비 패턴 변화를 예 측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30년간 잘 맞아왔고 앞으로도 잘 맞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음악 소비의 표준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직도 음반, 그러니까 CD를 직접 사서 듣는 분들이 있겠지만 음악 을 소비하는 ‘요즘의’ 보편적인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듣고 싶은 음악 이 떠오르면 어떻게 하시나요? 스마트폰을 켜서 ‘유튜브’나 ‘멜론’ 같 은 앱을 켜실 겁니다. 음악을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에 접속하는 거 죠.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검색하고 선택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마 치 뉴런이 스마트폰과 접속해 반응하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스 마트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고 통신망을 통해 ‘스트리밍streaming’되는 것이죠. 스트리밍을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배달’입니다. 음악을 소비하는 이 과정을 기술적으로 정리하면 ‘인공 장기(스마트폰)를 통해 디지털 플랫폼에 접속하고 비용을 지불한 후 배달(스트리밍)되어 소비한다’가 됩니다.
당근마켓은 이름도 재미있고 마케팅 전략도 훌륭했습니다. 그렇지만 소비자를 사로잡은 건 바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좋은 경험이 만드는 것이 바로 자발적 팬덤입니다. 집에 굴러다니던 물건이 간단하게 내 주머니의 현금으로 바뀌는 경험은 더 할 수 없이 매력적입니다. 포노 사피엔스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주변에 퍼뜨립니다. 당근마켓은 그동안 사람들이 중고물품 거래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좋은 경험을 멋지게 만들어낸 것이죠.
이것이 킬러 콘텐츠입니다.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힘은 섬세한 디테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더 안심하게 만드는 지나칠 만큼의 섬세한 배려, 그것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것이죠.
당근마켓의 킬러 콘텐츠는 조직 문화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 니다. ‘사장님이 좋아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이렇게 해주면 쓰겠다’라는 아이디어를 내는 조직 문화라야 디 테일이 살아납니다. 당근마켓이 창업 당시부터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치열한 무한대의 경쟁을 뚫고 선택을 받은 플랫폼들은 데이터 분석에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도서 판매로 시작해 미국 온라인시장을 석권한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데이터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비자가 남긴 데이터는 1도 버리지 마라.”는 그의 신념은 소비자 권력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이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이베이와 옥션을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온라인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입니다.
실제로 아마존이 10년간 축적한 데이터 분석 기술은 아마존을 살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마존은 이 기술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전환해 AWS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엄청난 매출을 창출합니다. 지금도 AWS에서 만들어낸 이익이 유통 산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모두 감당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유통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류센터의 확장과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전부 AWS를 통해 확보했고, 그것이 지금의 아마존을 만든 힘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에 묻어나는 진정성이었습니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삶 전체에서 묻어나는 향기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일관성을 갖고 진정성을 유지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많은 ‘생각’입니다. 포노 사피엔스의 약점 중 하나가 바로 생각보다는 검색을 중시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생각의 훈련을 의도적으로 많이 해야 합니다. 단편적인 정보는 현상을 전달하지만 이 면에 있는 본질의 변화까지는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그걸 읽어 내려면 평소 생각을 깊이 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데이터가 아무리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해도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실력을 갖추기 어렵게 됩니다.
최근 박진영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인생을 관통하는 진정성’에 큰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진실, 성실, 겸허’라고 힘주어 이야기합니다. 유교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가 포노 사피엔스 시대 아티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오랜 생각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고 저의 생각과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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