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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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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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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면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대폭 줄였다. 또 무급 휴게 시간을 계속 늘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시급 노동자는 더 받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시급 노동의 현장이며, 은퇴 후 일터에 뛰어든 단기 비정규직 고령자들의 세상이다. 수십 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당신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까 해주는 말인데, 버스 회사에서 업무상 재해라는 건 교통사고 하나뿐이야. 당신이 회사 버스에 치였어? 아니지? 당신이 한눈팔고 일하다 다친 거지? 그래 놓고 회사에 책임을 떠밀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똥을 무서워해서는 청소원 노릇을 못 하듯이 음식물 찌꺼기의 악취를 두려워해서는 경비원 노릇을 못 한다. ......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몇십 번씩 손을 씻는 이가 경비원 말고 누가 있을까? 우리의 손은 하루 종일 더러운 쓰레기를 만지는 손이지만 그런 이유로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실제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2017년 들어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상승했는데, 그 상승분 440원을 주기 싫어서 무급 휴
게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린 상황이었다. 경비원들이 모이면 웅성웅성 울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기대에 부풀었던 가슴이 서늘해졌다. 의원은 경비원이 ‘집에서 노는 것이 따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고, 선생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간 큰 구청장이나 시의원이 그런 조례를 만들려고 하겠어요? 당장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고 그리되면 다음 선거는 포기해야죠.”

졸음을 이기기 위해 봉지 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생으로 씹어 먹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먹을 시간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비에게는 꽃잎도 치워야 할 쓰레기다. 종일 꽃잎을 쓸고 있는 내게 고참이 한 수 가르쳐 준다면서 말했다.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었군.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거지.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 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잘 들으세요. 예전에 118동 경비원이 지하실에서 죽었다고 합디다. 혼자서 뒈지는 바람에 한참 뒤에야 알게 되어 난리가 났대요. 난 경비원이 또다시 죽어 나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소. 그러니 지하실에 들어가서 쉴 생각은 애당초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명절이면 경비원의 하루는 뜀박질로 바뀐다. ...... 경비원에게 명절의 ‘3대 공포’는 선물 상자 택배와 명절 쓰레기, 방문 차량이다.

똑같이 터미널에서 일한다 해도 터미널고속의 직원이냐, 파견 근로자냐에 따라 마시는 공기도 달랐다.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분진은 비정규직인 파견 노동자들이 마시고, 터미널고속 직원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정규직은 공기 순환 장치가 달린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용역인 경비원들은 매연으로 가득한 지하 주차장과 노상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10호를 보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이 지정하는 기타의 제반 업무”라는 포괄적 규정이 하나 더 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터미널고속의 직원은 경비에게 무슨 일을 시켜도 규정 위반이 아니었다. 이런 규정이 갑질을 부르고 경비원을 구속하는 족쇄와 굴레가 됐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은 근거도 없이 갑질을 했지만 대기업은 갑질을 정당화하는 규정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감독자들은 이 규정을 내세워 정규직의 고유 업무에 속하는 일들도 경비원에게 떠넘겼다. 대체로 고객과 실랑이가 벌어질 만한 일이나 운전기사들과 부딪혀야 하는 껄끄러운 일들이었다.

입사 첫날, 나는 별 생각 없이 미세 먼지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더니 돌아섰다. 등 뒤로 혼잣말이 들렸다.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

이 터미널에서는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삭풍 한가운데 서서 일해야 한다. 견디다 못해 용역 회사에 방한 장비를 요청하니 터미널고속에 말하라고 하고 터미널고속에 말하니 용역 회사에 말하라고 했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경비원들이 파카를 지급해 달라고 좀 더 높은 사람에게 건의해 봤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병이 났다고요? 그럼 빨리 사직서를 제출하세요. 그러면 실업 급여는 받을 수 있도록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해고하게 되며 이 경우 실업 급여를 못 받게 됩니다.” ...... “우리 회사는 규정에 질병 휴가란 것이 없습니다. 근로계약서 9조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우선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조항에 의한 적법한 조치입니다.”

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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