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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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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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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지난 몇 년 나는 어른들과 그림책을 읽고 문장을 쓴다. 그전에는 오랫동안 아이들과 온갖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책을 별로 안 읽었다. 책 안 읽는 아이와 책으로 일을 하는 어른 사이에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그림책이 있다. (프롤로그)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은 한 여인이 어른으로 살아온 긴 시간의 흔적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졌다. (...) 그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나이 든 어느 날의 내 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손이기도 하다. 오래 품고 있던 생각들을 천 삼고 아끼는 그림책들을 실 삼아 썼다. 쓰는 동안 나의 쓰기가 할머니의 바느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다. 성장은 언제나 균열과 틈,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들을 발견하며 조금씩 자신을 완성해 나가게 될 것이다.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스스로 고독하게 살기를 선택했다.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조금 외롭게 보내고 있다.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고 고요하며 느슨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고 채워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세상과 연결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세상 속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어떤 것을 해낼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 혼자지만 더 넓은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 이 마음은 ‘지금도 좋지만 더 좋아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절박한 마음이다. (실은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지만)

심란해질 때 《프레드릭》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다. 서로 잠잠히 제 할 일을 하는 들쥐들의 자유로움이 좋다. 각자의 노력을 재지 않고 나누는 너른 마음도, 시인이라고 인정해 주는 동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나도 알아”라고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프레드릭의 자신감도 좋다.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낯선 것을 포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마음이 좋다. (“넌 왜 일을 안 하니?”)

나에게 사람 인人의 두 획은 넓게 벌린 발이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한 사람의 다리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거나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안다. 그러나 기왕이면 혼자서도 잘 걷는 길이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지더라도. 우선은 혼자서,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싶다. (우선은 혼자서 씩씩하게)

나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이모는 자주 엉뚱한 일들을 하고 낯선 것들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 세상의 언저리에서도 재미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오해받는 사람이 제일 좋아)

모험은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나를 살아보는 일이다.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야)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

아마도 어른이 된다는 건 모순과 부조리와 불행의 중력 속에서 힘껏 저항하는 경험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그럴 수 없는 순간을 맞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잘 감내하는 일이기도 할 테다. (이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던 많은 선택은 대부분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완성해 나가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홀로 아름답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 그들 모두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흔적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도 이야기 밖에서도 말이다. 수업에서 이 책들을 소개할 때마다 우리가 함께 느꼈던 것은 일종의 희망이었다. 누군가는 응원을 받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다. 이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비단 이야기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담긴 단단한 심지, 그러니까 쇠락해 가는 삶의 이면에는 분명 점진해 나아가는 생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조금 설레며 기다린다)

나에게 노년이란 상실의 의미이기보다 완성의 의미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침내 내 삶이 한 줄의 아름다운 유언이고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 마거릿 와일드가 쓴 《할머니가 남긴 선물》과 미스카 마일즈가 쓴 《애니의 노래》처럼. (나는 조금 설레며 기다린다)

기억에 남는 문구

외롭기 때문에
자유롭고 고요하며
느슨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고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