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지난 시간 동안 인공지능 기술은 꾸준히 발전했다. 사람들은 이 기술에 열광했고 쉽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다고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 인식이 달라졌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인공지능시대가 온다고 해서 모두 컴퓨터 학원이나 대학원을 다니며 개발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현장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의견을 듣고 반응을 계속 살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며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람이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바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는 비율이 높아지겠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양과 범위가 커지면서 종이사용량처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 또한 늘어날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더 빠르고 완벽한 문장으로 생일축하 메시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쓰는 감성까지 대신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전자책이 종이책의 바스락거림을 구현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쓴 편지가 비록 성능적인 관점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이 부분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IT와 DT의 차이는 인간의 판단력이 중심이 되느냐, 인간의 판단력에 대한 과신을 내려놓고 데이터 안에서 메시지와 패턴을 찾느냐이다. 100개 데이터 전체를 빅데이터라고 하고,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분류, 분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포함된 DT를 활용한 혁신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사람이 빅데이터를 판단하여 분석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람의 판단으로 처리하기에는 빅데이터의 양이 많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사람의 논리로 빅데이터를 해석하면 전체 데이터 중 일부분은 깔끔하게 해석되지만 나머지 일부분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체 데이터 중 일부를 인포메이션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선별할 때, 인간이 염두에 두고 있는 논리와 관련이 있는 데이터는 인포메이션으로 선별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포메이션이 아닌 것으로 선별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DT는 인간의 사고력을 내려놓고, 올데이터에서 패턴이나 메시지가 마치 매직아이가 떠오르듯이 나타나도록 하는 기술이다. DT는 인간의 사고력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올데이터 안에서 답이 나타나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데이터드리븐(Data-Drive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DT의 2가지 핵심 기술이 바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반도체와 같은 하이테크놀로지 분야에서만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피나 패션처럼 기술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분야에서도 성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사례들을 구현하기 위한 인공지능 기술들은 이미 시장에 완성된 형태로 나와 있다. 인공지능 활용의 성패는 인공지능 기술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반면에 스포츠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승부 조작이 없으며 상대팀의 사인을 훔치는 등의 반칙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한다면 상당히 잘 통제된 변수들 내에서 인공지능이 판단과 예측을 할 수 있다. 또한 교육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되었다면, 인공지능이 효과가 있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은 세대가 다음 기성세대가 될 때까지 약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스포츠에 인공지능이 적용될 경우에는 매 경기마다 승패가 결정되고 시즌마다 우승팀이 나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른 주기로 인공지능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다.
에이전트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훈련 데이터를 데이터 마이닝으로 수집하는 과정은 요리 재료를 확보하는 과정이며 전처리 과정은 확보된 요리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준비된 훈련 데이터, 즉 빅데이터가 요리 재료가 되는 것이고, 요리를 하는 과정이 바로 인공지능인 것이다. 요리 재료의 신선함이 중요하듯이 훈련 데이터도 주기적으로 수집해서 오래된 훈련 데이터가 아닌 최신 훈련 데이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성능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수집한 후 전처리하는 과정을 거쳐서 훈련 데이터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확보한 훈련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훈련하고, 훈련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능을 테스트하고 빅데이터 수집부터 성능 테스트까지의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 갓난아기가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인공지능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완벽해야 된다고 기대하는 경우도 옳지 않다. 예를 들어서 인공지능이 암을 진단할 때의 정확도가 100퍼센트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건설하려고할 때, 이 빌딩의 높이가 한밤중에 떠 있는 보름달만큼 높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은 보름달 높이와 새로 건설하려고 하는 빌딩의 높이를 비교하지 말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가장 높은 빌딩의 높이와 새로 건설하려고 하는 빌딩의 높이를 비교해야 한다. 암을 진단하는 기존 방법의 정확도와 인공지능의 암 진단 예측 정확도를 비교해야지, 아직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암 진단의 정확도와 인공지능의 성능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딥러닝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양질의 훈련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은 매일 약 10GB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시력이 온전한 사람들은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들인 셈이다.
인공지능을 어떤 방향으로 훈련시켜야 가치판단을 더 잘할수 있을지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더 창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도 알기 어렵다. 만약 이 이야기를 듣고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안에 가치판단이나 창조성이 없다고 해서 직업을 바꿀 필요는 없다. 현재의 직업과 주어진 일 안에서 가치판단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시도하면 된다.
인공지능이 하게 되는 일은 결국 추천 또는 예측이다. 기존방법의 성능을 측정하고 인공지능을 적용했을 때의 성능을 측정해서 인공지능을 더했을 때 그 성능이 개선되었는지 판단해야한다. 추천의 경우에는 추천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추천 자체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추천의 결과로 원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정도로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했을 때 실제 구매를 더 많이 했는지로 평가할 수 있고, 웹페이지에 고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표현했을 때, 해당 웹페이지를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는지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측의 경우에는 다시 분류와 분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빅데이터가 활용되는 단계는 빅데이터를 보기 좋게 시각화하는 1단계, 전문가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2단계, 인공지능에 입력해서 곧바로 결과를 도출하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상위 단계로 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인간의 판단력에 대한 과신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느냐,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인공지능의 결과를 얼마나 수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인공지능을 이끈 양대 축은 전문가 시스템과 머신러닝이다.1990년대 초반까지 인공지능 분야를 이끌던 전문가 시스템이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 과정을 흉내 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아티피셜 인텔리전스(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불렀다. 하지만 최근의 인공지능은 머신러닝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머신러닝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적 판단을 흉내 내고 있다. 인간의 감성적 판단은 수많은 경험을 기반으로 확률적으로 가장 좋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과신과 집착을 내려놔야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가치판단과 창조성이 필요 없는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이 가치판단과 창조적인 일에 더많은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는다면 이성 맹신주의가 만들어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스스로에게 수명을 부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도 자신의 존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인간의 감정과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유사한 의미의 무언가를 느끼고 서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칭 ‘인공 감정’이라고 부른다면, 인공 감정을 윤활유로 하여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가치판단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창조적인 시도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유행하고 남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한다고 하니까 우리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자는 정도의 접근이라면 인공지능이 굳이 필요 없다. 인공지능 중에서도 전문가시스템이 필요한 경우, 딥러닝이 아닌 머신러닝이 필요한 경우, 딥러닝이 필요한경우를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 자체의 특성, 인공지능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조직의 인식과 문화, 투입할 수 있는 시간, 인력, 비용을 고려하여 구분해야 한다.
인공지능 전담팀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소프트웨어개발 역량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실제 인공지능 개발을 할 때 필요한 시간과 노력 중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은 약 20퍼센트 정도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과 기술이 전무한 사람도 파이썬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하고 연습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인공지능 전담팀은 인공지능을 적용하려고 하는 산업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인문학적 소양, 통계, 수학적 지식, 경영학에 대한기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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