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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주식하는 마음 - 홍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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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하는 마음

홍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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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하지 않으면 과거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게 되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평가하면 잘못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평가로부터 나온 원칙을 아무리 시장에 적용해봤자 잘못된 학습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복잡적응계가 아닌 곳에서라면 기록의 중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명시적인 원칙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원칙을 따르는 훈련을 많이 하여 좋은 원칙이 ‘몸에 기억되도록’ 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성공을 위한 확실한 원칙이 존재하기 어려운 복잡적응계에서는 확률론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고, 확률론적 사고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확실하지 않은 가설들을 쌓아 올리다가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하고, ‘틀린 이후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여기서 더 사야 하나’ 또는 ‘지금쯤 팔아야 하나’라는 두 가지 고민을 늘 하게 됩니다. 질문을 이런 식으로 하면 경로 의존성에 노출됩니다. ‘내가 이미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앞으로의 주가 변동은 내가 주식을 보유했느냐 아니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주가 변동과 상관없는 요소가 사고의 한 축이 되어버리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현재 이 금액을 100%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면, 오늘 이 주식을 신규로 얼마나 매수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오는 대답과 나의 실제 포지션(보유 비중 또는 보유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포지션을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좋은 질문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어야 하고, 그 대답은 ‘틀릴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답할 수 있다’와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쁜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바꾸는 일은 정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대답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질문을 구축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검증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쁜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변환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투자를 시작할 때는 ‘내가 이 게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즉, ‘얼마의 기간에 유의미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가’에 대해 먼저 대답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투자에 나서는 전체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개별 투자 건의 유효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 기간이 1년이라면, 내가 신경 써야 할 주가의 측정자는 대부분의 일간 변동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하루 동안 단기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고 한다면 분 단위, 심지어 초 단위의 주가 변동까지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전체 시장과 개별 주식은 어떤 관계일까요? 장세란 일반적으로 ‘시장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의 향방’을 의미합니다. 주가지수는 그 정의상, 그리고 계산 공식상 ‘개별 주식의 움직임의 합’입니다. 장세가 좋아서 개별 주식이 상승하는 게 아니라, 개별 주식이 많이 올라서 장세가 좋은 것입니다. 내가 고른 주식이 잘되기만 한다면 전체 장세가 무슨 상관인가요? 물론 전체적으로 투자자들의 심리가 우울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멀쩡한 주식의 가격도 함께 하락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전체 장세의 영향은 사라지고 개별 주식 고유의 움직임만 남습니다.

서로에게 종목 추천을 요구하지 말고 추천하지도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다듬어나가는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가격이란 결국 남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요. 요리나 복싱과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도 남들이 ‘맛없다’라고 평가해버리면 맛없는 요리가 되는 곳이 자본시장입니다. 내가 1라운드에 상대방을 KO시켜도, 남들이 ‘당신이 졌어’라고 판단하면 판정패가 되는 곳이 자본시장입니다. 나만의 생각이 있어야만 타인의 생각을 듣고 나의 것에 합칠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없다면 타인의 생각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일 뿐입니다.

생각의 차이를 포착하는 것은 투자 기회를 찾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함정에 빠집니다. ‘내 생각엔 시장이 틀렸어. 그러니까 지금 사야 해.’ 이 두 문장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중 핵심은 한쪽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는가입니다. 문장의 목적어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시장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느냐가 아닙니다. ‘한쪽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느냐입니다. 틀린 쪽이 시장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거나 시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포지션을 바꿀 때, 그 차이가 메꿔지겠지요.

복잡계에서의 실력이란 결국 의사결정의 질을 의미합니다.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어떤 투자 대상에 대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각 시나리오의 논리 고리를 세분화해서 가능성·타당성·개연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최종 단계인 개연성에서 확률을 정확히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성과 타당성 단계에서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상대적으로 쉽게 걸러낼 수 있습니다. 가능성과 타당성이 부족한 의사결정만 걸러내도 의사결정의 질은 유의미하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요? 주가가 올랐을 때 미련 없이 파는 게 맞나요, 계속 버텨야 하나요? 계속 버틴다면 결국 언제 팔아야 하는 건가요? 주가가 하락하면 과감하게 손절을 해야 하나요, 목표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존버'는 승리하나요? 물타기는 패망의 지름길인가요, 자신감의 표현인가요? 전부, 전부, 전부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답하고자 하는 단편적인 격언들 또한 무의미하긴 마찬가지고요. 주식을 팔까 말까 고민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아이디어가 소진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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