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영적 교사로서 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명상해 온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흔히 들은 얘기 중 하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명상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명상은 내면을 깊이 변화시키고 영적인 진실을 드러내지만, 많은 사람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심지어 오랜 세월 명상을 해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때 내가 행했던 명상을 비롯한 일부 명상 수행들이 이러한 변화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데는 분명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놓치기 쉬운데,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태도로 명상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통제하고 조작하는 태도로 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안의 모든 것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느껴지도록, 경험되도록, 알려지도록 허용함으로써 깨어난다. 오직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더 깊은 수준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은 아주아주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적 경험을 억압하거나, 우리가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을 억압하는 데에 명상 기법을 사용하기 쉽다. 그러나 정작 요구되는 것은 정반대이다. 참된 명상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보이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경험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스스로를 놓아 버린다. 우리가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놓아 버린다.
명상은 조용한 곳에 앉아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여기면 영성과 우리의 일상생활은 둘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된다. ‘나의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따로 있고, ‘나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이다. 실재에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이 모두 하나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 모든 것은 온통 하나인 영(靈)의 나뉨 없는 표현이다.
만약 생각들이 오고 간다면, 그것들은 진정한 당신 자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들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라는 ‘생각’을 실제 자기 자신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자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기의 경험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당신은 자기의 생각들을 보는 목격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든지 간에 그런 생각들은 진정한 당신이 아니다. 생각들을 보고 있는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늘 있다.
명상적 자기탐구를 하기 위해 어떤 정해진 자세로 앉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나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무엇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가? 지금 무엇이 이 차를 마시고 있는가? 지금 무엇이 이 글을 읽고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다. “나는 무엇인가? 생각이나 기억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인가? 그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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