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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수축사회 - 홍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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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사회

홍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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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주력산업에 중국이 더 많은 설비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발 초기에 한국은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원부 자재와 장비 수출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중국의 공장들이 속속 완공되면서 2008년 이후 공급과잉이 한국 경제를 덮친 것이다. 조선, 철강, 화학, 자동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온라인게임 같은 산업들이 어려워진 것은 한국을 모방한 중국의 전략 때문이다. BRICs의 대대적인 투자와 경제개발은 결론적으로 세계적 차원의 공급과잉만 심화시켰을 뿐이다.

문제는 현재 부채 수준이 2008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어느 국가나 역사상 부채가 가장 많다. 개인의 부채뿐 아니라 국가, 기업의 부채도 대부분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금리가 낮고 시중에 돈이 풍부하니 지난 10년간 누구나 부채를 늘려왔다. 기축통화를 보유했고, 4차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는 미국과 국가경쟁력이 강력한 독일 정도만 예외일 뿐이다. 과도한 부채에 빠져 있는 남유럽에 퍼주기만 하는 EU를 보면서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적자본의 축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권 탄압, 언론 탄압, 인터넷 등 소셜미디어의 철저한 통제로 근본적 문제를 덮으려 한다. 비극적인 얘기지만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사회적자 본이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회적자본을 보강하지 않은 채 경제성장과 일당독재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정권이 폭력으로 통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회적자본을 축적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자본이 충만하면 공산당 일당독재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과연 가능할까?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반면 시장경제는 민간 부문의 자율성이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국가의 개입은 복지 등 최소한에 그치고,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면서, 사적 재산권과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국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탄생한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시에 자리 잡으면 공산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현재 한국의 보수 진영은 미국 중심의 시각이 강해 중국에 다소 적대적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통일 문제 때문에 친중국 성향이 강하다. 기업들은 중국과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까지 감안할 경우, 균형 혹은 친중국 쪽에 가깝다. 이런 이분법적 태도는 한국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한국에는 미국과 중국 둘 다 중요하다. 한국 스스로 진영 논리를 만들어 친미와 친중으로 국론이 분열되면, 미-중 G2 패권대결에서 한국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약간 모호성을 유지한 채 안보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양국에 주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 들어 정권마다 나름 수축사회를 탈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추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들은 팽창사회를 가정한 과거형 대책이라서 별 효과가 없었고 예산만 낭비한 경우가 많았다. 팽창사회에서도 양극화 같은 사회적 과제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정권의 안정성이 낮았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는 장기적인 사회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었다. 결국 근본적인 사회 문제는 다음 정부로 넘기는 책임회피만 20여 년째 해오고 있는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자생력을 확보하는지 여부다. 북한 경제가 자생력을 가지면 한국의 부담이 줄어들고, 북한도 자신감을 가지고 통일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조기에 붕괴하면 한국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스스로 자생력을 확보할 때까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북한의 리더십 문제는 한국이나 북한 모두에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향후 통일 과정은 세심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국제정치, 남북관계, 경제협력, 사회적자본 확충 등 북한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들이 비슷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 한편 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관계에서 전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 한국의 기득권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의 기득권 계층이 친미, 자유민주주의,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만일 전쟁 위협이 사라지면 기존 기득권 계층의 이데올로기 기반이 단번에 무너진다. 통일에 앞서 완전한 평화 체제가 구축되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시급히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남 집중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한국은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다. 이런 국가에서 지역별 집중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국토 전체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비좁은 국토 전체를 거대도시인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개념으로 재설계하면 어떨까? 메갈로폴리스란 점(點)으로 나누어진 도시들을 강력한 교통과 통신 인프라로 묶어 띠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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