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어린 내가 지금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좀 황당하고 어이없겠지만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픽 웃을 것 같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는걸. 보기 좋아’라고 하면서. 내가 바랐던 가족은 세상이 바라는 가족, 즉 세상이 기대하는 형태였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들이 있는 가족.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설사 가족 간 살인이 벌어지더라도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보호해주는 가족. 그것만이 정상이자 표준이자 평범이라고 못 박은 가족. 그래서 홀로 설 때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했다.
_ 「프롤로그_ 남들처럼 살지는 않습니다만」 중에서
릴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카레에 닭고기는 좀 아닌 것 같아.” 느닷없이 왈칵 서러워졌다. “아니, 왜? 너 카레 좋아하잖아. 닭고기는 없어서 못 먹고.” “내가 닭고기는 좋아하지만 카레는 안 좋아해. 거기다 카레에 들어간 닭고기는 정말 별로야.” “뭐, 뭐라고? 너 카레 좋아했잖아!” “그건 내가 초딩 때였잖아. 나 이제 고3이야.”
_ 「카레에 닭고기는 좀 아닌 것 같아」 중에서
그렇게 따박따박 대꾸하고 식탁에서 일어난 릴리의 뒷모습을 보니 영화 <벌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은희가 좋다며 수줍게 따라다니던 일 년 후배가 갑자기 그녀를 외면한다. 은희는 그 변심을 이해할 수 없어 섭섭한 마음에 후배를 불러내서 따진다.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너무 잘 쓰려고 스스로를 달달 볶지 말고 그냥 쓰레기를 쓰자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그러자 큰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쓰자”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광명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거기다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니고 번역가로 쓰는 글인데 왜 그리 잘 써야 한다고 안달했을까.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글도 아닌데 고뇌하지 말고 평소 쓰던 대로 쓰레기를 쓰고 나서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면 될 것을.
_ 「쓰레기를 쓰자」 중에서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종이 기저귀조차 마음 편히 사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쪼들려서 엄마가 시장에서 끊어 온 천으로 기저귀를 만들어 쓰던 때였다. 아무튼 우리 형편에 유럽여행이란 터무니없는 사치이자 허세였다. 무엇보다 갓난아기인 릴리를 데리고 어딜 간단 말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얼굴을 돌리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갈 수 있다. 가겠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가게 돼 있어.”
_ 「엄마가 “예스”라고 말해주면」 중에서
“정말 아빠는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 느닷없이 릴리가 폭탄을 투척했다. 간만에 큰마음 먹고 네 토막에 만 원이나 하는 갈치를 사서 심혈을 기울여 구운 어느 날 아침이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면서 뽀얗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꿈의 갈치가 아니라, 긴 뼈에 앙상하게 달라붙은 초라한 살을 바르느라 여념이 없던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깐, 우리가 릴리 아빠(그러니까 나의 전남편)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_ 「아빠를 꼭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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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_책 읽는 다락방J(유료광고포함)
책읽어주는남자 #책읽어주는라디오 #오디오북 E: hipuhaha@naver.com [책읽는다락방 J]입니다. 오늘은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란 책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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