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10년 전에 책 읽기 힘들다던 친구는 서서히 책 읽기를 포기하고 있고, 내가 제사날로 찾은 원인은 이러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래.” 친구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 나와 30여 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휘력 부족이라는 소견 따위나 듣다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휘력이 부족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드니까 책장이 넘어가질 않고, 책장이 넘어가질 않으니까 졸린다. 졸음을 유발한 책은 여간해서 다시 펼치기 쉽지 않다.
정확한 어휘를 구사해야 하는 이유는 해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시나 소설 등의 문학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쓴 애매모호한 표현은 여운과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모호함에서 비롯된 해석이 제각각 달라 벌어지는 논의조차 의미 있다. 그러나 언론기사나 논문, 논술이나 프레젠테이션, 자기소개서 등 정보나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어휘와 표현을 써서 읽거나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만 겪은 일을 당신에게 알리고, 당신이 겪은 일을 내가 알 길은 언어밖에 없다. 언어는 강철보다 견고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려 금 가게 하고, 틈이 생기게 하고, 마침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언어의 한계를 서로 달리 살아온 삶의 경험과 환경에서 비롯된 거라 믿어 소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휘를 선택할 때 조금은 더 친절해질 수 있다. 상대의 처지에 적절한 낱말을 찾게 된다.
맞춤한 낱말을 구사하면 불필요한 곁가지 서술을 줄여 효율적일 뿐 아니라 그 낱말을 디딤돌 삼아 하려는 이야기를 자신감 있게, 자유자재로 발전시킬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는 이름을 안다고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사물과 현상은 맞춤한 이름을 알면 거의 아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아는 게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아는 것이다.
체험한 낱말과 체험하지 못한 낱말은 자연이 솟아오르는 소리와 공룡이 땅을 내리찍는 소리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자신이 몸과 정신으로 체험한 낱말을 사용해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고 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 가끔 멋 부리고 싶어서 체험하지 못한 낱말을 쓸 때가 있는데 여지없이 체하거나 탈나서 뱉어내야 한다. 체험한 낱말의 개수가 살아온 나날만큼 늘 수 있기를 바란다.
문제는 형용사를 용언이 아니라 수식어로 사용할 때다. 딱 맞는 명사를 찾지 못했거나 잘 쓰는 것처럼 떨뜨리고 싶을 때 수식어로 꾸미려 드는 경향이 많다. 남발하면 어떤 어휘를 꾸미는지 찾느라 어지럽고 요란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말과 글을 미심쩍게 만든다. 안 붙이면 허전해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는 게 우선이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돌려놓으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
진부한 이야기처럼 흔하고 낡고 닳은 낱말들은 그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조탁해보라는 도전의식을 갖게 한다. 맛있다, 슬프다, 고맙다, 미안하다, 소중하다, 착하다, 나쁘다, 힘들다, 피곤하다. 아프다, 잘했다, 못했다, 좋다, 싫다, 밉다, 괴롭다, 신기하다, 이상하다 등이 그러하다. ‘너무’, ‘정말’, ‘진짜’, ‘엄청’, ‘완전’, ‘되게’, ‘리얼’, ‘대박’, ‘개’를 앞에 갖다 붙이지 않아도 그 심정의 진실함을 알릴 어휘와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망칠 구멍이 많은 비겁한 어휘를 고른다.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단적이고 편협한 어휘를 쥐려 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도사리는 유혹이자 위험이다. 관점과 어휘력의 상관관계를 예민하게 감지해 피하지 않고 승부하면 차차 미립날 수 있다. 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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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저] 언어생활의 중요성 - 맞춤법, 사람과 사물에 대한 언어, 수직적 비교평가 언어 조심, 조심, 조심!!!
[어른의 어휘력] 책을 읽었는데, 일반적으로 공유할 만한 내용을 찾는데 고민이 많이 되었네요. 책에 소개하는 어휘는 너무 생소하고,, --;; 그래도, 맞춤법 등 참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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