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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 수업 -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Y Mor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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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 수업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Y Mor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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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리석음과 방탕함이다. 어리석음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이성이 없고, 방탕함은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악덕은 어리석음과 방탕함에 대한 징벌이다. 악덕에 열중해 사는 사람은 두 배로 빨리 죽는다. 미덕에 열중해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영혼에 흠이 없으면 육체도 건강하다. 선하게 영위된 삶은 내적으로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길게 지속된다.

천국에선 모든 게 환희요, 지옥에선 모든 게 고통이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이 세상에선 환희와 고통이 더불어 존재한다. 우리는 양 극단 사이에 서있으며,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다. 운명은 변화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행복하지도, 모든 것이 불행하지도 않다. 이 세상은 무(無)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천국과 결부되면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운명이 바뀌어도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분별력이 있다는 의미이고 새로운 것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연극처럼 뒤얽혀 있다가 마지막에 다시 전개된다. 그러니 좋은 결과만을 생각하라.

철저함과 깊이가 있어야만 본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언제나 내면이 외면보다 더 커야만 한다. 그런데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자재가 부족해 완공되지 못하는 바람에 입구는 궁전 같지만 거실은 오두막인 집과 같다. 그런 쓸데없는 사람들 곁엔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의 인사말이 곧 끝나버리듯, 그들과의 대화도 그렇게 되어버린다.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에 쉽게 현혹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내면을 살핌으로써 그들의 텅 빈 모습을 확인하고, 두려움에 가득한 사람들의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낸다.

환호의 현관을 지나 행복의 집안으로 들어서면, 비탄의 문을 지나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을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이며, 등장할 때의 갈채보다 행복한 퇴장을 더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쁘게 시작했다가 매우 비극적인 결말을 체험하는 것은 불행한 자들의 일상적인 숙명이다. 등장할 때의 범속한 박수 소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물러날 때 표출되는 대중의 감정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소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며, 나가는 문지방까지 행운이 동반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사람은 정중한 대접을 받으나, 퇴장하는 사람은 경멸받기 쉽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열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물이 얕고 안전한 항구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때로는 약이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물리적으로, 때로는 도덕적으로 그것을 방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의사에겐 처방의 학문만큼이나 무처방의 학문도 필요하며, 때로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기술이기도 하다. 거대한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손을 놓고 누워버린다는 것이다. 적절한 때에 양보하는 것은 훗날의 승리를 보장한다. 샘물은 약간만 휘저어도 흐려진다. 이럴 때 샘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둬야 맑아진다. 분열과 혼란에 대한 최상의 방책은 그것이 지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 위대한 보호, 그것은 분별력의 제왕이자 조심성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늘이 준 재능이며, 최초이자 최고이고 가장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보호 장비이자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무언가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혹은 더욱 덜하게 인지시켜준다. 인생의 모든 행위는 보호 능력의 결과에 달렸다. 그런 능력은 모든 일에 필요하다. 모든 일은 분별력 있게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성에 걸맞은 모든 것에 대한 자연스런 애착이며, 그 애착은 모든 경우에 가장 올바른 것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겉으로 온전해 보이는 사람 모두가 실제로 온전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런 모습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망상의 지식인 기만을 낳고,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지원을 받으며, 진실을 약속하는 확실함보다는 거짓을 약속하는 무지에 더 큰 애착을 보인다. 거짓은 많으나 진실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만은 반드시 다른 많은 기만을 필요로 하기에, 모든 것은 망상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기만은 공중에 세워진 것이기에, 반드시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어 있다. 잘못 착수된 일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는 것은 이미 의심스러운 일이다. 너무 많은 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옳은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잘 모르겠거든 언제나 가장 확실한 것을 붙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총명하다는 평은 아니더라도 철저한 사람이라는 평은 들을 것이다. 그 반대로 배운 자는 모르는 일에 끼어들어 임의로 행동할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험을 무릅쓴다면, 얻는 것은 당연히 파멸뿐이다. 그러니 항상 확실한 것을 붙들라. 이미 완성된 것은 잘못될 수 없다. 지식이 있든 없든, 어떠한 경우에서도 확실한 것을 택하는 것이 특별한 것을 택하는 것보다 현명하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가 가진 지위보다 더 나아야 하는데,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지위가 아무리 높더라도 인격은 항상 그보다 더 훌륭해야 한다. 포용력 있는 정신은 스스로를 항상 더 넓혀나가며, 그럴수록 그의 지위도 더 두드러져 보인다. 반대로 편협한 사람은 이내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고, 결국에는 명망을 잃고 따르는 자들도 잃는다. 아우구스투스 대제(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_옮긴이)도 군주로서의 지위보다는 인간됨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자신의 영예로 여겼다. 여기에 고상한 정신과 사려 깊은 자신감이 따른다면 그 이상 훌륭한 인간됨은 없을 것이다.

주제넘게 나서지 않으면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 남들의 존중을 받으려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라. 자신의 인격에는 관대하지 말고 엄격하라. 남들이 청할 때 들어서야 환영받는다. 부르지 않을 때는 절대로 가지 말고, 남들에게 청해질 때에만 가라. 제멋대로 나서게 되면, 일이 잘못될 경우에 모든 불만을 다 짊어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일이 잘된다 하더라도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제넘게 나서면 온갖 무시와 경멸을 당한다. 뻔뻔하게 달려드는 자는 창피를 안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무 곳에도 쓸모없다는 것은 커다란 불행이다. 하지만 매사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은 더 큰 불행을 낳는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얻음으로써 잃게 되고, 처음에 그토록 그를 열망하던 모든 이들에게 결국 혐오의 대상이 된다. 으뜸 패를 곳곳에서 쓴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완전함을 자신에게 끌어당겨 그것을 모두 소진시킨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으뜸 패를 다 쓰고 나면, 결국에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존중받는 게 아니라 천한 사람이라고 멸시를 받는다. 그러한 극단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영광을 누릴 때 절제하는 것이다. 완전함에도 지나침은 있으니, 그것을 표현할 때에는 절제하라. 불꽃이 활활 타오를수록, 그 불꽃은 스스로를 태우며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자기표현을 아끼면 더 높은 평판을 얻는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자화자찬이거나 자학 둘 중 하나다. 전자는 허영을, 후자는 소심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말하는 자를 어리석음에 빠뜨리고, 듣는 자를 고통에 내맡긴다. 이는 일상적 교제에서도 피해야 하지만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의 회합에서는 더욱 금해야 할 일이다. 분별없음을 조금만 내비쳐도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로 여긴다. 아첨이나 비난, 두 암초 중 하나에 부딪칠 위험은 상존하는 것이기에 현명한 자도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때 똑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거절할 줄 아는 것은 승낙할 줄 아는 것만큼 중요하다.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이 점을 꼭 유념해야 한다. 거절의 방법도 다양하다. 한 사람의 “아니오”는 많은 다른 사람의 “예”보다 더 높이 평가된다. 왜냐하면 금빛 찬란한 거절이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승낙보다 더 많은 것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거절을 언제나 입에 달고 다니면서 다른 이의 모든 것을 망쳐놓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겐 거절이 언제나 최고의 원칙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혹 나중에 모든 것을 허락해도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미 그들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쳐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간청하는 사람이 점차 자기기만에서 벗어나게 하라. 또한 그 무엇도 결코 완전히 송두리째 거절해서도 안 된다. 그리되면 그 사람은 당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설 것이다. 거절의 쓴맛에 달콤함을 가미해주는 약간의 희망을 언제나 조금은 남겨두라. 마지막으로, 호의가 사라져버린 빈 공간을 정중함으로 메우라. 승낙이나 거절의 말은 빨리 하되, 언제나 오랜 생각을 거친 후에 하라.

아픈 손가락을 남들에게 보이면, 모두가 그곳을 찌를 것이다. 그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소연하지 마라. 악의를 품은 자는 언제나 약한 곳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당신의 노여움은 적의 즐거움을 더해줄 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나쁜 의도를 품은 자는 드러날 수도 있는 결함을 찾아 늘 주위를 맴돈다. 채찍으로 때리면서 민감한 부위가 어딘지 확인하며, 상처가 발견될 때까지 수천 번을 시도한다. 신중한 자는 절대로 자신의 상처를 보이지 않으며, 개인적인 불행 혹은 타고난 불행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다. 운명조차도 때로는 우리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릴 때 즐거움을 느낀다. 운명의 매질은 언제나 상처를 노린다. 그러니 아픔은 끝나고 즐거움은 계속되도록 아픈 곳도, 즐거운 곳도 드러내지 마라.

매사에 소소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과의 사귐을 방해하는 자객과도 같다. 이들은 모든 것에서 이기려고만 하며 평화로운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상황을 지배하면 모든 것은 끝난다. 이들은 파당질을 일삼고, 어린애처럼 순수한 사람조차 적으로 만든다. 이들의 그릇된 생각이 알려지면 모든 사람이 적대심을 품고 그 의도를 막을 것이니 이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이들의 괴로움을 가중시킴으로써 불쾌함만 안게 될 것이다. 이들은 비뚤어진 머리와 흉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괴물은 멀리하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아야 한다. 이들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당신의 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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