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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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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사이 몽고메리(Sy Montgomery)

오랜 시간 동물의 삶과 감정을 연구한 저자가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우친 진리를 담은 따뜻한 과학 에세이다.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독일·스페인·중국·러시아·터키·일본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 그 어느 때보다도 동물권 문제가 활발히 거론되는 시대다. 그만큼 동물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들의 삶과 감정은 흔히 논쟁의 주제가 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이 책은 우리 곁의 동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되어준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이 친구가 된다는 발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감정을 동물에게 투영하는 의인관이라고 묵살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감정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물의 감정을 잘못 해석하는 것보다 동물에게 감정이 아예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 훨씬 더 악질적이다.” 저자는 동물을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같은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소통과 교감의 모습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동물과의 관계를 너머 그 이상의 의미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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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동물들은 과연 내 인생에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그들은 내게 좋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벌레, 동남아시아에서 만났던 반달곰, 케냐에서 발견한 얼룩덜룩한 하이에나 등 이제껏 만난 동물들은 모두 좋은 피조물이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경이롭고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그저 곁에만 있어도 배울 점이 많았다.

_<들어가는 말> 중에서

내가 모은 에뮤 자료는 새롭지만 그리 놀라운 정보는 아니다.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하며 발견한 것처럼 에뮤가 도구를 사용한다든가 다른 에뮤 그룹과 치열하게 싸운다는 등의 내용은 없다. 하지만 에뮤와 지내면서 작가로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다. 호기심, 기술, 지식만으로는 동물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리와 유대감을 쌓았던 것처럼 에뮤와도 유대감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마음뿐만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다.

_2장 <유대감을 쌓는다는 것_거대한 새 에뮤> 중에서

크리스토퍼는 네발 동물이고 발굽이 있지만 나는 두발 동물이고 발굽이 없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우리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는 돼지였고,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했다. 몰리가 개임에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개이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또한 넓은 아량으로 고작 인간에 불과한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_3장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법_꿀꿀이 부처 그리스토퍼 호그우드> 중에서

북방족제비는 눈부신 흰 털, 고동치는 맥박, 끝없는 식욕을 갖고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삶을 산다. 이 등불 같은 존재가 성냥불이 어둠을 쫓아내듯 내 마음속의 분노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경외심과 용서로 가득 찼다.

_5장 <순수함, 강함, 완전함으로 무장하다_크리스마스 족제비> 중에서

이 캥거루들은 본연의 삶을 사랑하는 복합적이면서도 개별적 인 존재였다. 하지만 내게는 야생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들 가슴속에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똑같은 야생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우리가 온몸으로 찬양하는 야생, 자전하는 행성에서 우리를 생존하게 만드는 야생이었다. 이곳 운무림에 와서 다시금 깨달았다. 야생은 삶을 갈구하게 만드는 행복한 배고픔과 같아서 우리를 온당하고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_7장 <야생은 우리를 생존하게 한다_나무타기캥거루>

개와 문어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다. 개는 태반이 있는 모든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유전물질의 90퍼센트가 일치한다. 또한 개는 사람과 함께 진화했지만, 문어와 사람의 진화에는 5억 년의 격차가 있다. 문어와 사람은 땅과 바다만큼 다른 것이다. 우리가 문어처럼 사람과 완전히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만난 클라라벨과 다리가 여덟 개 달린 그녀의 친족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래도 무척추동물, 그것도 해양 무척추동물과 친구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문어와 친구가 되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의 감정을 동물에게 투영하는 의인관이라고 묵살당하기 십상이었다.
사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영하기는 쉽다. 사람 사이에서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고심해서 고른 선물이 친구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차갑게 거절당하는 일은 흔하게 벌어진다. 하지만 감정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물의 감정을 잘못 해석하는 것보다 동물에게 감정이 아예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 훨씬 더 악질적이다.

_9강 <인간과 다른 종을 이해한다는 것_대문어 옥타비아> 중에서

서버를 만났을 때 내 나이가 만 58세였는데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내가 좋은 인간이 되려면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버가 내게 가르쳐준 수많은 진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교훈은 이것이다.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 보여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머지않아 아주 멋진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_10강 <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은 저절로 나타난다_보더콜리 서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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