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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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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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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SNS를 들여다보면,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 같고 일상이 화려해 보인다. 나만 지루한 일상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고 외롭기 그지없다. 머릿속으로는 ‘다들 매일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 하며 애써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헛헛하고 왠지 모를 박탈감에 빠져 쓸쓸해져간다. SNS를 하면 할수록 행복 박탈감을 겪게 된다. 이곳에서 행복의 비교가 시작되고, 나의 불행감이 느껴진다. 한편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사진을 보고 있으니 나도 행복해보이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화려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YOLO’ 인생처럼 배낭을 메고 멋진 배경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즐거워하며,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나를 꾸미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행복하니까 나도 행복해야 할 것 같고, 행복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늘 행복한 것처럼 보이고도 싶다. 마치 행복을 경쟁하며, 나도 누구 못지않게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과 긍정을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은 바람직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의무로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게 행복을 의식화해서 행복을 좇지만 않는다면 행복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해롭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한다면 행복 오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복을 목적으로 좇지 않고 행복해지는 과정에 집중했을 때 행복 오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성향에 따라 경험하는 행복 역시 다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행복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봉사활동을 할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강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경험하는 행복은 모양도, 색깔도 전부 다르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명확한 정의도 없고 정답도 없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를 알려주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인사를 가르친다. 아이가 작은 사탕을 받을 때 엄마는 옆에서 아이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를 기대하며 아이의 감사 표현을 돕는다. 이렇게 우리는 어린아이가 감사를 배우길 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가르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릴 때 배운 감사의 마음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성인이 된 언젠가부터 고맙다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된다. 기계적으로 ‘고맙습니다’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할 뿐 감사의 마음은 인색해진 지 오래다. 어렸을 때 그토록 배워왔던 감사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다. 어떤 사람들은 감사를 빚진 마음을 덜어내는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일부는 남에게 신세를 지는 열등한 상황에서 감사를 말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감정은 아니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면 다시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미안함,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감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관점도 있다.

지친 일상 속에서 힘을 다시 낼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을 만날 때 내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뭉클함과 삶에 대한 소중함, 심지어 먹먹함이 일어난다. 이러한 경외심은 자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5월의 이파리는 어떻게 이토록 싱그러운지 신기하다. 가을의 단풍을 보면 어떻게 그토록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지 황홀해진다. 대차게 떨어지는 폭포는 놀라움을 일으킨다. 길에서 일개미들이 줄지어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볼 때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렇게 자연에 대한 가치를 경험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경외심 역시 감사의 표현이다. 감사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삶에 대한 진정한 향유라고 부를 수도 있다. 출퇴근할 때 지나치는 가로수길,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 즐거운 아이의 웃음소리 등을 음미하고 향유하는 것이 감사다. 이러한 관점을 갖는 것은 결핍감과 불합리함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치유제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평화를 얻고 싶다면 감사를 세어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감사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과 부적관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감사하는 태도를 가질수록 시기심과 질투가 적어진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를 받았다고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부정적 감정인 경쟁심과 시기심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부정적 사건을 겪었을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영향을 덜 지속시킨다. 지나친 걱정과 염려는 사건을 더 악화시키고 부정적 감정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감사의 태도는 부정적 감정을 완충시켜주고, 이로 인한 감정소비와 에너지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와 짜증, 두려움으로 마음이 힘들어진다면 부정적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대신 자신이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극한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은 역경에 닥쳤을때, 더 끔찍한 역경이 일어난 것을 상상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사실 비교를 통한 감사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자신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평안을 가져오게 해준다.

우리에게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 특히 부정적인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대처방식과 정서적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힘든 것인지 해석되지 않는 순간들도 많다. 하필 지금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해석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막한 고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사건의 전말을 밝혀 고통의 원인을 찾겠다는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내려놓도록 한다. 더 넓고 초월적인 눈으로 자기 자신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한 사건을 신의 뜻의 일부로 바라보면 안도가 되고 신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돕는 것이 종교다. 특히 우리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종교의 영향력과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 종교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사건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때 더할나위 없는 힘이 된다. 비록 아프고 힘겨워도 특별한 가치를 깨닫고 신의 사랑을 경험하는 데 종교의 의미가 있다.

자존감을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관점이 필요하다. 아픈 과거를 돌아보며 연민에 젖어 있거나,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해 신세 한탄만 해서는 변화하기 어렵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어야 얼룩진 상처가 사라지고, 현재의 나도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상처가 남아 있는 과거는 괴롭기 때문에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해서 자꾸 피하게 되고, 결국 내 안의 아픔을 돌봐주고 보듬어 줄 겨를이 없어져서 상처는 곪아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자신과 마주 앉는 용기다. 상처받고 지친 내 모습과 마주 앉아 ‘힘들었어도 괜찮아, 아팠어도 여기까지 왔잖아. 힘들었지만 잘 버텼어’라고 말해주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이때 자존감이 꿈틀거린다. 아픈 과정을 버텨온 나를 바라볼 수 있고, 비난과 불평의 대상에서 위로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필요하다.

그동안 행복의 열쇠를 찾기 위해 건강, 부, 성공을 쫓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돈이 있고, 성공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실 건강하고 물질적 여유가 있으면 행복감을 느끼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필수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행복하면 건강해지고 성공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행복하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13) 행복한 사람들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질병에 걸리더라도 쉽게 회복되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건강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건강해야 행복해지는 것을 넘어 행복하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울해질 때는 자기 자신보다는 외부에 더 많이 초점을 두는 것이 좋다. 외부로 초점을 돌리면 자신에게 초점을 둘 때보다 덜 우울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울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부환경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할 때는 의도적으로 감사한 점을 세어본다. 오늘 하루 누구에게 고마웠는지, 나의 어떤 상황이 감사한지를 돌이켜보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드는 경우가 있다. 실제적으로 축복을 세어보는 것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 많은 과학연구가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에서 약 3주 동안 밤마다 감사했던 것 3가지를 적어보게 하고 신체적 안녕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결과는 감사한 점을 작성한 사람들은 수면시간이 증가했고, 쉽게 일어날 수 있었으며 깨어났을 때 상쾌하다고 말했다. 감사가 수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신체적 컨디션이 향상된 것이다. 이것은 수면과 관련 있는 시상하부가 감사에 의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감사가 잠들기까지 시간을 줄이고, 수면시간도 연장시키고, 결국 면역체계, 우울, 불안, 통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더이상 잠과 싸우지 말자. 잠이 안 오거든 양을 세는 것 대신에 축복을 세어보자. 단, 핸드폰을 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늘 일과 삶의 균형에서 실패하고, 일만 쫓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장 내 압박감과 경쟁, 생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직장 내 행복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직장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영역은 과도한 업무량 이전에 상사, 동료와의 관계다. 예를 들어 빈정대는 말을 하거나 괜한 트집을 잡는 말을 자주 하는 동료가 있으면 피곤해진다.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 계속해서 부정적 피드백을 하거나 협업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진 동료를 보면 짜증이 나고 더이상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아진다. 이러한 직장 동료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일 것이다. 직장 내 행복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긍정적 정서와 업무의 의미감이다. 직장생활에서 긍정적 정서, 즐거움, 기쁨을 자주 경험할수록 직장생활에 만족감을 갖게 된다. 직장에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하더라도 긍정적 기분을 느끼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엄마친구아들 이야기를 한다. 한참 공부하는 시기에 엄마친구아들은 전교에서 몇 등을 하며, 공부를 새벽까지 한다고 말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엄마친구아들은 대기업에 입사했단다. 결혼할 때가 되면 엄마친구아들은 돈많은 누구와 결혼했다고 한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엄친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면서 위축감에 빠지고 자신감도 잃게 된다. 이렇게 경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마만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나도 나를 남과 비교한다. 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고, 나보다 넓은 평수의 집에서 살고, 나보다 아이도 잘 키우는 친구, 동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기심과 질투심을 갖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장점, 가치는 쓸모없게 여기고, 남들이 가진 잘난 것만 부러워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불행의 늪에 빠져들어간다.

바닥을 쳐봐야 인생 대전환의 기회가 찾아온다. 많은 성공의 신화를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장 밑바닥을 쳤을 때 새로운 관점이 열려서 성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역경 속의 축복은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스러웠던 상황과 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하고, 고난을 통해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받은 축복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를 더 즐겁고 활력있는 삶으로 안내하며, 누군가를 돕고 봉사하고 싶은 넓은 마음을 갖게 한다. 감사의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지게 만든다. 타인과 진실 된 마음으로 관계를 맺으면 다른 사람들도 진정한 만남을 가지며 더할 나위 없는 충만함을 만들어나간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현재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된다. 감사의 마음은 실패에서 배운 것을 생각하게 도와준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처하게 되면 자연스레 자존감이 낮아진다. 나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지고, 쓸모없는 존재로도 여겨진다. 심지어는 나의 존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생각에 봉착하게 되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며, 고통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스스로 비하하고 만다. 그러나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이것을 믿어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데도 나의 가치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외부로부터 오는 관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고 있으며,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내가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남을 돕는 행위를 하면 나의 가치감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부정적 감정인 불안·우울·충동·기억·분노·슬픔을 겪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 먼저 고통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고통과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고통이 있는 삶을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하며 싸우는 동안 우리가 원하는 진짜 삶은 옆으로 밀려나가기 때문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유보할 필요는 없다. 고통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와의 연결을 돕고 가치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념행동을 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물에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수용전념치료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자기자비다. 내가 친구에게 동정과 친절을 베푼 것처럼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실수하고 실패할 때 우리는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등으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아이들은 성인들보다 외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추구하기 쉽다. 돈, 지위, 브랜드 상품, 외모 등 물질주의적인 것들 말이다. 하지만 물질주의적 가치관이나 외적 목표를 추구할수록 삶에 덜 만족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며, 감사하는 태도가 낮다. 경제적 성공, 외모, 학력 등의 외재적 목표는 다른 사람이 보이는 반응과 관련이 있지만, 성격이나 강점과 같은 내재적 목표는 자기실현 및 성장과 관련이 있다. 친구로부터 인정받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특정 브랜드 상품을 사고자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표를 세운다면 아이의 잠재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진짜 강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외모, 성적, 물건 등과 같은 외적인 목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쉽지만 강점, 가치관 등의 내적인 목표는 비교하기 어렵다. 내적 가치를 둔 목표는 자존감을 향상시켜주고, 대인관계에 힘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자녀들이 행복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외적인 목표가 아니라 내적인 목표를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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