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 문태준

728x90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문태준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시는 열매 맺는 자리가 각각 다른 듯하다. 얼마 전 유자를 따는 부부를 보았는데, 서로 다른 높이에 서로 다른 빛깔과 굵기로 매달린 유자처럼 한 편 한 편의 시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유자마다 단맛의 정도가 다르고, 껍질의 두께가 다르다.
다만 유자와도 같은 시가 있어 그 시들이 바구니에 담겨지더라도 개중에 한두 개의 시는 나무의 가지 제일 끝에 매달려 거둬들여지지 않고 남겨져도 좋겠다. 그러면 그 남겨진 시는 햇살과 바람의 일부가 되거나, 새의 일부가 되거나, 별과 허공의 일부가 되거나, 벌레의 일부가 되거나, 툭 떨어지거나, 그곳에 시가 매달려 있었다는 기억이 사라질 때에 함께 사라질 것이다.

- 1부 꽃은 맑게 준비되어 우아함을 내밀었다 <유자와 한 알의 시> 중에서

‘일관(一貫)’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뜻이다. 처음과 끝을 꿰뚫어 하나로 꿴다는 뜻이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의지, 하나의 원리로 꿴다는 뜻이다. 이렇게 뜻을 새겨본다면 이 말은 수심(修心)의 차원에 있기도 하다. 일심(一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수행자들이 잠깐이라도 쉬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이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번뇌나 장애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의 진행이 종결되도록 그 끝까지 가보는 일은 마음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흔들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을 정려하게 잘 단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믿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自信)하는 일이기도 하다.
- 1부 꽃은 맑게 준비되어 우아함을 내밀었다 <끝까지 가본다는 것>

시인 김용택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눈 오는 날 마루에 걸터앉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는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요. 눈이 쌓인 나무가 되는 거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는 거죠. 새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죠.”

- 1부 꽃은 맑게 준비되어 우아함을 내밀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중에서

바깥 세상과 만날 때에 생겨나는 우리 내면의 속뜻을 주의깊게 읽어야 한다. 속뜻을 읽으려면 내 생각을 낮춰야 한다. 그리고 바깥 세상과의 만남과 접촉을 내가 일방적으로 종료하지 않고 그 끝을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 내면은 그 스스로의 여린 떨림을 느끼게 되고 이내 감격하게 된다. 내 속의 거인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 3부 또 다른 내일이 온다 <내 속의 거인을 깨워라> 중에서

말쑥하고 반드러운 모과보다는 그 생김새가 울퉁불퉁한 모과를 더 선호한다. 면이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한, 울퉁불퉁한 모과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모과는 여리고 부드러운 것의 매력을 알게 한다. 백색의 겨울에 이 그윽한 노란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은근하게 끌어당긴다.

- 3부 또 다른 내일이 온다 <노랗고 울퉁불퉁한 모과> 중에서

설령 마음을 주고받는 일로 인해 고통을 받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연락과 교환을 중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받게 될 고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은 산처럼 커질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4부 나는 문득 그대의 얼굴을 만난다 <마음은 산같이 자라네> 중에서

나무의 성품은 고요하고 견고하고 동요가 없다. 육중한 바위처럼. 무너지지 않는 산처럼.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조용하고 슬픈 자세”란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세속과 세사는 소란하기 그지없지만 나무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다. 그러나 외로운 가운데서도 나무는 조용하다. 외로운 시간을 나무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무의 미덕이다.

- 4부 나는 문득 그대의 얼굴을 만난다 <조용하고 슬픈 자세> 중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입과 코와 눈과 귀가 바깥에 나가서 구걸해 얻어오는 것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입과 코와 눈과 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한다. 튀는 럭비공처럼. 물론 이 감각 기관들이 얻어오는 것들은 탐나는 것들이다. 달콤하고 자극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금물과 같다. 마실수록 갈증을 유발하는.
그러나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면 높은 파도를 뚫고 큰 바다로 나아가는 기선(汽船)처럼 살아갈 수 있다.

- 5부 가만히 내 마음 옆에 서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중에서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