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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부서진 여름 - 이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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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여름

이정명

성공의 절정에 이른 그날 아침, 아내가 사라졌다
[뿌리 깊은 나무][별을 스치는 바람] 이정명 신작 장편소설

진실과 거짓, 사랑과 증오, 의지와 운명......
우연이라는 삶의 불가해한 힘 앞에 무너져내린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이정명의 신작 장편소설 [부서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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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내는 그토록 오래 남들에게 감추어온 그의 삶을 통째로 알았다. 그의 현재뿐 아니라 감춰진 과거도, 최고의 영광뿐 아니라 최악의 모습도, 점잖은 겉모습뿐 아니라 구역질 나는 내면까지도.
오래 잊었던 열여덟 살의 여름이 떠올랐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변에서 죽은 사람을 본 그해 여름. 얕은 갈수기 물살에 하천의 바닥 자갈이 쓸리는 요란한 소리. 젖은 옷자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뺨에 달라붙은 수초와 이마에 맺힌 물방울……. 그 일은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과 달랐고 그 모든 일을 합쳐놓은 것과도 달랐다.
그는 이제 안다. 부끄럽고 부도덕한 과거를 대면할 용기가 없었음을. 지금까지 미루어왔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화려한 하워드 주택과 볼품없는 맬컴 주택은 더할 바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웃이었지만 두 가족을 구분 짓는 은밀한 경계는 존재했다. 더없이 친밀한 이웃이라는 관계를 한 꺼풀 벗기면 거기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냉혹한 구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부자와 빈자, 윤택한 자와 누추한 자, 기회를 가진 자와 소외된 자,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로 환원되는 비정한 계급체계. 한가족처럼 매일 함께 어울려도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하워드 주택은 맬컴 주택 사람들이 꿈꿀 수는 있어도 가질 수 없는 대상, 바라보긴 해도 다가가지 못할 영역이었다.”

“아내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공포에 그는 망연자실해진다. 하나씩 무너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몰락은 한순간에 오는 것이다.
그는 이제라도 진실을 알릴 수 있다. 아버지가 지수를 죽이지 않은 것처럼 형도, 그도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지수를 죽인 건 순진하고도 멍청한 거짓말들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사랑과 복수는 착각과 오해로 시작되었고 지탱되었다. 처음부터 진실은 없었어도 거기에는 삶의 열정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만약 그를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것이 다 헛것이라도 그 순간을 채운 기쁨만은 진실이었으리라.”

'한조라고 했지? 힘들 거라는 거 알아. 지수랑 친했으니까. 그래도 괜찮아질 거야. 그렇지?'
한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괜찮은 건 없을 것이다. 이 여름의 짧은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남은 삶을 규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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