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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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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박광일

“왜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상해로 향했을까”
서울에서 상해, 상해에서 중경, 중경에서 환국하기까지
‘대한민국’의 탄생을 추적하는 인문학적 탐사기


1910년 8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한국인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조국에서 다시 살날을 꿈꾸던 청년들은 신한청년당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 위해, 시민이 주권자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희생을 불사했다. 자주적 독립, 그저 그 이유 하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는 역사 탐방기다. 1919년 서울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외쳤던 ‘상해 시기’, 1932년부터 1940년까지 항주 등 여섯 군데를 옮겨다니며 물 위에 뜬 정부 상태였던 ‘이동 시기’, 그리고 1940년부터 1945년 마지막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경 시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길을 함께 탐사한다.
아울러 이 책은 단순히 27년 노정을 여행하는 답사기에 멈추지 않는다. 3년간 여섯 차례나 답사하며 직접 촬영한 생생한 현장 사진은 물론,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료 도판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이동 경로, 답사 지도 등을 포함한 컷들을 200여 장 수록해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자취를 따라가본다. 그 증거들을 찾다 보면 나라 밖 어딘가에서 단 하나의 변혁을 꿈꾸며 열정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젊은 투사들을 만날 수 있다. 김구와 김원봉, 이봉창과 윤봉길, 조소앙과 박찬익, 곽낙원과 정정화까지 100년 전 뜨거운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꿨던 우리 운동가들과 만나는 진짜 역사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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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길은 고되고 힘들 것이다. 타는 듯한 햇빛과 뼛속으로 스며드는 스산한 기운,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버스와 기차 여행은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뺏긴 사람들의 피난살이와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는 무겁고 답답한 걸음을 한다. 하지만 이 여정의 끝에 독립과 새로운 나라가 있다는 희망을 가진 이들은 닥치는 고통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테다. 그러니 만약 지금 이 책을 들고 답사를 떠난다면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자. 그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프고 화날 일을 겪을 때 같이 슬퍼하고 화내는 거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을 좁혀보자.
-2부 물 위에 떠다니는 정부 <대장정, 길에서 역사를 만들다>

이봉창이 상해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김구는 본격적인 거사 준비를 했다. 1931년 11월, 하와이애국단에서 보내준 1천 달러를 거사 자금으로 쓰고 중국군 소속 김홍일(왕웅)과 김현을 시켜 폭탄 두 개를 준비하도록 했다. 하나는 일황 폭살용, 다른 하나는 이봉창의 자살용이었다. 그리고 이봉창에게 계획을 알려준 뒤 안공근의 집으로 가 선서식을 거행했다. (중략) 그러나 히로히토가 탄 마차는 지나가버렸고 뒤따르던 궁내부 대신의 마차만 뒤집어졌다. 실패였다. (중략) ‘불행히도 명중하지 못했다[不幸不中].’ 만주사변 직후 반일감정이 격해진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마음이었다. 이 말은 곧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만보산 사건 이후 멀어졌던 한국인, 그리고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지지를 회복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과 중국이 대일전선에 같이 설 가능성을 다시 만든 것이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일본 천황을 저격한 이봉창의 결단>

박물관 건물이 있는 마당에는 우리나라의 소녀와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슬프지만 의미 있는 조각이 있다. 조각의 이름은 〈한중 평화의 소녀상〉으로 2016년 제막식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이용수 할머니와 중국의 진련촌陣蓮村(천롄촌) 할머니가 참석했다. 두 소녀상의 그림자가 주는 메시지도 특별하다. 우리나라 소녀의 그림자는 깨져 있다. 꼭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꿈이 깨져버린 비참한 상태를 표시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중국 소녀가 걸어와 곁에 앉은 것처럼 발자국이 표시되어 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나누면 나을까. (중략) 다시 보니 두 소녀상 옆에 빈 의자가 하나 더 있다. 소녀들과 함께할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앉을 자리다. 그리고 앞의 글에 덧붙인 한마디. “We can forgive, but we can never forget.” 그렇다. 잊지 않아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잊어버린다면,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이 사죄를 해오더라도 용서할 방법이 없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한국과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은 풍경>

마침내 11월 3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경 연화지 청사 계단에 모였다.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교차시켰다. 기나긴 임시정부를 마감하는 상징적 자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광복을 맞이한 벅참,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으리라. 주석 김구를 가운데 두고 국무위원들이 중심에 섰다. 그리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임시정부 요인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도 불러모았다. 맨 마지막에는 임시정부 경비를 하던 경위들도 불렀다. 한 명이라도 더 사진에 들어가야 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 장 더 찍었다. 청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꼬마 심현석도 이때 사진에 잡혔다. (중략) 이렇게 꿈에도 그리던, 그리고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소중한 나라라고 알려주던 고국으로 귀국을 했다. 거창한 환영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고생을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거의 1년이 다 지나 도착한 그들을 대하는 고국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3부 독립전쟁, 그리고 해방이 오다 <아! 환국>

기억에 남는 문구

비극적 역사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위로다.
이를 위해 먼저 비극이 시작된 사실을 파악하고
가해자가 인정하며
잘못한 사실에 대해 용서를 빌 때
고통을 겪은 분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