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김혼비

728x90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여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하는 여자들이 있죠. 어라? 이상하다? 이상할 것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축구를 하는 여자는 같은 동일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피버 피치]로 알려진 영국의 축덕 작가 닉 혼비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신인 작가 김혼비의 본격 생활 체육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축구 좋아하고, 축구를 직접 하는 것은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근육을 키우고, 축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워 머리를 짧게 치는 이들의 이야기죠. 그리고 그렇게 할 기회를 알게 모르게 놓쳐 왔던 당신의 이야기임은 물론입니다. 로빙슛처럼 우아하고, 오버래핑처럼 호쾌한 김혼비의 문장을 만나는 순간, 누구라도 달리고 싶어질 거예요. 이미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우아하고, 호쾌하게.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나를 포함 , 대부분의 여자 축구 팬들 머릿속 검색창에 ‘축구’를 쳤을 때 뜨는 이미지들은 아마 몇 년도 무슨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터트린 역전골이라거나,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던 순간, 좋아하는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 이런 것들일 것이다.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은진아, 달려! 달려!”
주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상대팀 골대로 전진하겠지 하는 순간, 그래서 남자팀 수비수 두 명이 그녀 앞으로 달려가는 순간, 그녀는 다시 몸을 틀어 공을 몰고 남자 2호 앞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페이크를 써서 또 한 번 그를 휙 제쳤다. 아까보다 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와, 세상에. 설마 했는데 굳이 다시 가서 그걸 또 하다니, 이런 무서운 여자. 도끼로이마까 깐데또까 같은 여자. 우리의 무서운 깐데또까는 이제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다른 수비수가 재빨리 주장에게 따라붙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그마저도 가볍게 따돌리고 골대 앞까지 간 후 직접 슈팅을 날렸다.
완벽한 슛이었다. 그것도 로빙슛(lobbing shoot), 완벽한 로빙슛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내 마음속에서도 오버래핑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축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목표 비슷한 게 생겼다. 열심히 인사이드킥을, 아웃사이드 드리블을, 턴을, 트래핑을, 리프팅을 연습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뿌듯했던 내게 ‘나도 저기서 뛰고 싶다.’, ‘나도 얼른 진짜 시합에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쳐간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 연습 경기든 공식 경기든 축구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된 나에게는 우리 팀 일이면서도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저 자리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 것이다.

“어머 , 혼비야! 웬일이니! 웬일이니! 야 , 너 종아리에 알 박였다! 너도 이제 축구 좀 했다고 다리에 근육이 막 잡히기 시작하는구나! 언니 , 쟤 다리 좀 봐!”
“와 , 진짜다! 혼비 종아리에 알 생겼네!”
옆에서 그걸 또 받아 주는 윤자 언니와 그걸 듣고 굳이 내 종아리를 보러 오겠다는 팀원들 때문에 줄이 잠시 흐트러졌다. 그걸 통제해야 할 주장도 “어디, 어디” 하면서 같이 뛰어왔다.
아니, 이게 대체 뭐라고……. 누구보다 놀라서 봐야 할 사람은 나라고!

이날은 조금 달랐다. 분명히 매직 타임이 끝나고 조명탑이 꺼졌는데도 어떤 세계가 내 마음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이어진 주장과 선출 트리오의 현역 시절 이야기들처럼. 이번에는 그들이 각종 시합에서 활약했던 무용담들을 들었다. 모두들 잔뜩 신나 있었다. 이야기 속 그녀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들만큼이나 반짝반짝 빛났다.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고, 올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은 차가 거의 없어서 나는 조금 조바심이 났다. 그녀들이 그렇게 빛이 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이제 조금은 알기에 , 축구 경기의 여운에 취해서 자랑스레 앞다투어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끝나기 전에 차 안에서 보내는 오늘 밤이 뚝 끊기지 않기를 11시 59분의 신데렐라 같은 기분으로 간절히 바랐다.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