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 이나미

728x90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이나미

‘어른’이 채 되기도 전에 노년으로 저물어가는…
수많은 모순과 허무함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삶에 대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 연구가 이나미 박사가 황혼으로 접어든 자신과 그 주변을 때로는 깊숙이, 때로는 멀찍이서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마음은 어딘가에 놔두고 나이만 들었다’며 한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며 안도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멋진, 때로는 허무한 거짓말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덧 마주하게 되는 노년의 삶. 우리는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내다보며 비로소 죽음까지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늙어감’을 받아들이고 ‘사라짐’에 대한 서글픔을 잠재우는 시간.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의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황혼 녘의 단상과 삶에 대한 성찰을 풀어낸 그의 글을 천천히 따라가보자.

책 읽으러 가기

책속에서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늙거나 죽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분명 살아 있지만 “그 사람, 왜 빨리 죽지 않지?” 하는 소리나 듣는, 쓸모없거나 남들에게 폐만 끼치는 할 일 없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를 가르쳤던 장자가 보고 싶다오!)
어쨌거나 누구는 아주 열심히 건강 관리를 하고, 누구는 인맥 관리를 성실하게 하고, 또 누구는 열심히 봉사하며 산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평화로운 안락사를 선택하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자신의 의지나 계획과 다르게, 대부분은 어이없고 슬프게, 때론 끔찍하고 잔인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다가 비슷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복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다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식들 다 키우고 난 뒤 서로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허리를 토닥거리면서 함께 늙다가 비슷한 시간에 죽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자연 그 자체란 느낌이 든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극복하고, 함께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정. 그게 진짜 부부의 정이 아닐까 싶다.

매일 회개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예 회개할 일을 하지 않으려고 매일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준비일 수도 있겠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가하면 꼭 엉뚱한 짓을 해서 회개해야 할 리스트만 만들 터이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도 말고, 묵묵히 내게 떨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좋은 죽음 준비일 수도 있겠다.

부모 자식들이여,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고 제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자.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친절을 베풀고 있다면, 마음에 없더라도 감사의 말을 해주면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감사의 말을 자신은 듣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을 수 있다. 인생에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조정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닦을 일이다. 기대하지 말고, 혹시 내 후의에 대한 반응이 시원치 않다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고 해준 바는 잊어버리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

어떤 관계든 그 목표는 성공적인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죽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이별을 위해 살아 생전 주체적으로 멋지게 이별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그들 역시 늙고 죽을 운명인지라 자녀들을 제대로 성숙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유산이다. 젊어서는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모범을 별로 보이지 못하고 위인이 되지 못한 평범한 부모들로서는 어떻게 늙고 죽느냐에 대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오래 지니고 품는 것만이 아니라,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손들은 기일 같은 것 챙기지 말고, 제사 같은 것 당연히 지내지 말고, 나에 대한 기억 역시 깃털처럼 가볍게 날려 버리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의 아름다움이 ‘순수미’라면, 노년의 아름다움은 죽음과 가깝고 운명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식시켜 주고 자연의 장엄한 힘을 절감케 하는 ‘숭고미’에 가까울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젊은이들의 삶은 꽃과 열매가 가득한 풍성한 녹색에 가깝다면 노년의 삶은 메마른 협곡이나 사막 같을 수 있다. 전자의 풍경에서 생기 가득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후자의 풍경은 때로 우리를 압도시켜 작은 자아 따위는 버리게 하는 자연의 광대한 힘을 만나게 한다. 늙고 죽음은 우리를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운명의 숭고함을 절감하게 만드는 메마르지만 광활한 사막 같은 것은 아닐까.

대부분은 젊고 새로운 상대가 보기에는 훨씬 더 좋고, 오래 산 내 짝의 단점이 매일 보인다 해도, 웬만하면 그냥 원래대로 산다. 상대방을 너무 좋아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상대방을 선택했던 내 의지, 완벽하지 않은 서로를 참으며 견뎌준 그동안의 시간이 갖고 있는 가치를 존중해주려는 자존심 때문이다. 문제는 많지만 황혼 이혼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까지의 내 결혼생활이 아무 의미 없이 끝난다고 한다면 자존심이 너무 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추천한 크리에이터

이 책을 추천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