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나는 오래 전 병을 앓고 절집 음식을 먹으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부처님은 ‘식자제食自制가 곧 법자제法自制’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음식을 다스려야 법(진리)을 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수행에서 먹을거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을 잇게 하고 삶의 질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혀의 맛을 좇아가는 삶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조율하며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절집 음식은 현대인을 힘들게 하는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이자 삶을 긍정으로 이끄는 하나의 철학입니다. 음식이야 대충 먹으면 되지, 먹는 것에 신경 쓰지 말자, 맛있는 것만 먹겠다, 등 이는 음식에 대한 게으름과 무지함입니다. 음식이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지 뭐가 있을까, 하며 사찰음식에 깃든 철학을 알려하지 않는다면, 마치 목이 마른 사람이 강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는 글’ 중에서)
이튿날 지게를 찾으러 밭에 가보았더니 무가 죄다 얼어버렸습니다. 나 때문인 것 같아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아, 언 무를 어디에 쓴담! 그런데 노스님은 무를 자잘하게 썰어 실로 꿰어 탱자나무에 걸어 두라고 했습니다. 무가 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마르는 동안, 절에서 살겠다는 생각은 굳어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노스님은 말린 무를 물에 불렸다가 고추장 생강 들기름을 넣은 양념에 재워 굽고 배추고갱이와 함께 상에 올려 주셨습니다. 배추고갱이에 구운 무를 올려 돌돌 말아 먹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눈물의 반은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님 되는 게 뭐가 좋다고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절에 남았을까, 정말이지 스님 노릇 잘해야겠다, 얼어버린 무를 맛있는 찬으로 바꾸어내는 신심으로 수행해야겠다는 그런 다짐의 눈물이었습니다. (‘여는 글’ 중에서)
사찰음식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큰 무엇을 단박에 바꿔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기회가 된다면, 그래서 하루를 돌아본다면 그것은 삶의 태도를 바꾸는 작은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작고 소중한 깨달음’을 심어주길, 오늘도 한 그릇 밥에 담아 정성으로 기도 올립니다. (‘여는 글’ 중에서)
우리 몸은 흙 물 불 바람,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과 영양은 모두 자연에 있다. 흙과 물, 불과, 바람이 만들어낸 자연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땅의 흙에서 자란 곡식, 땅속의 뿌리, 동서남북 바람을 맞으며 자란 열매, 물속의 풀, 더 깊은 바다 속의 해초…, 땅과 하늘, 바다의 광활한 생명을 우리 몸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진료차 병원에 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일곱 살 된 아이를 보았다. 그런데 아이의 한쪽 다리가 코끼리다리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조금 까져도 놀라기 마련인데, 부모 심정은 어떠할까. 가슴이 아팠다. 아이는 닭다리를 손에 들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말을 붙였다.“너, 뭐 좋아하니” “치킨이요.”곁에 서 있던 엄마가 거들었다.“내일 항암치료 들어가는데 밥을 잘 먹지 않아요. 뭐라도 먹여야 할것 같아서요……. 임신했을 때 저도 치킨을 많이 먹었는데 아이도 좋아하네요.”하지만 처음부터 아이가 닭고기를 좋아했을까. 처음엔 엄마가 먹였을 것이다. 그 맛에 길들여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 스님, 음식을 맛으로 먹어야지요. 너무하신 것 아닌가요’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자기 생각이 분명하지 않다면, 음식을 먹을 때 맛만 좇아가게 된다. 맛만 좇으면 많이 먹게 되고 건강을 잃게 되고, 건강을 잃으면 일과 관계도 원만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생각이 분명하게 서 있다면, 조율과 절제, 비우는 삶이 가능해진다. 음식을 먼저 혀의 맛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진정한 삶의 맛, 지혜의 맛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알면 두렵지 않다. 두려움은 보이지 않을 때 커진다. 아픈 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전에 내 몸의 상태와 변화를 정확히 알려고 한다면, 그 대처 방법도 적극적으로 찾아보려는 의지가 생긴다. 담대해지는 것이다. 몸을 아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이들은 얼마나 될까.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하다. 예쁘다 밉다. 키가 크다 작다,뚱뚱하다 말랐다……, 몸에 대한 생각들이 고작 몇개의 형용사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떠오른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은 물론 ‘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연 몸은 무엇인가. (본문 중에서)
“스님, 저는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면 쑥쑥 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밥을 남기지 않도록 주로 튀기거나 달고 짠 반찬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의 식판이 깨끗이 비워지면 내가 잘 하고 있구나, 뿌듯하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을 해줄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음식을 잘 먹도록 해주는 게 더 중요함을 알았어요. 언젠가 우리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만났는데 건강을 해칠 만큼 살이 많이 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니 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동안 단순한 생각 없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네. 지금이라도 바로 잡으면 됩니다. 바르게 알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본문 중에서)
사찰음식의 근본은 마음속 깨달음을 지향하는 선식禪食이다. 단지 고기를 절대 먹지 말라는 경계와 금지의 가르침이 아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되 삶을 온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신다면,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한 균형 잡힌 소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두 번 먹을 거 한 번으로 그 양을 줄이고, 한 번을 먹더라도 생명과 환경을 고려한 음식을 먹는 것.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생각이 더 중요하다. (본문 중에서)
부처님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잘 살피라는 말이다. 이런 삼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좀 지나친 것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음식은 약이다’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약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것. 자칫 약을 잘못 쓰면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또 작은 것에 소홀하여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일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본문 중에서)
자, 휴일 혹은 퇴근이 좀 이른 날이라면, ‘얼른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잠이나 자야지’라는 생각을 바꿔 된장찌개라도 보글보글 끓여보라. 나를 위한 요리들,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먹으려는 궁리를 해보라. 요리는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충 생각 없이 먹는 음식들이 우리의 많은 것들, 건강과 삶의 즐거움, 작은 기쁨들을 앗아가고 있다. (본문 중에서)
호흡기가 약해지고 마음에 우울감이 많이 생기는 봄에는 쓰고 떫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특히 쓴 맛을 내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겨울 동안 쌓인 몸 속의 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머위, 쑥, 두릅, 씀바귀 엄나무순, 민들레, 취, 곰취, 참죽순, 냉이, 원추리, 죽순, 미나리, 망초, 홋잎나물, 곤드레나물, 고수, 물쑥뿌리, 세발나물 등 시장에 가면 봄볕만큼이나 종류가 많은데 주로 무침과 국을 끓여 먹는 것이 좋다. (본문 중에서)
고수를 처음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이다. 맛이 너무 고약하다,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래서 다시 먹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번 더 시도하고 그 참맛을 알게 되는 이들이다. 맛은 길들임이자 습관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헛구역질까지 하던 사람이지만 고수 맛을 알게 되면 고수가 고소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고수를 ‘고소’라고도 한다. (본문 중에서)
보통 사람들은 더위에 기운을 내게 하려고 삼계탕이나 장어 같은 것을 먹는다. 음식 자체에 들어있는 에너지를 먹고 힘을 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찰음식의 기본 원리는 우리 몸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도록 도와주는 음식이다. 혈액이나 기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막힌 곳은 뚫어주어 몸이 스스로 작동하여 힘을 내는 이치이다. (본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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