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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나의 로망, 로마 - 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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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로마

김상근

카이사르와 한니발 등 우리가 흔히 ‘로마’라고 하면 떠올리는 역사적 인물들뿐 아니라 키케로와 세네카, 베르길리우스 등의 고전 작품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저자가 이런 작품들을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 글의 눈높이를 낮추어 누구든 편안하고 흥미롭게 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고전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했던 독자라면, 이 책이 큰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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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로마는 고대와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겹치는 도시이므로, 우리가 그곳에서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가 꿈꾸었던 제국의 야망과 키케로가 품었던 공화정의 이상이 충돌합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직선과 베르니니의 곡선이 교차합니다.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곳도 로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매춘부가 많은 도시가 로마이고, 세상에서 가장 성직자가 많은 곳도 로마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로마에서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름 모르는 골목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프롤로그

오늘 우리가 방문할 포로 로마노, 즉 로마 광장은 바로 이 로마 공화정의 난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곳이다. 권력의 질주를 막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정교한 법률적 장치를 고민했고, 어떤 사람은 종교적 믿음을 이용하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제어할 수 없는 권력의 찬탈자에게 암살의 단검을 휘두르는 마지막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는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이 난무했다. 승리자는 자주색 토가를 입고 천하를 호령했으나, 패배자는 눈물을 떨구며 제발 가족들만은 살려달라고 읍소해야만 했다. 포로 로마노는 대리석과 무너진 건물 더미의 무덤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고대 로마의 건축 잔해가 파편처럼 굴러다닌다. 그러나 그 무너져 쌓여 있는 대리석 더미 사이에는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 있고, 무심한 로마의 바람이 내리 쉬는 한숨처럼 그 곁을 스쳐 지나간다. ▶ 3장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광장

포로 로마노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무너진 대리석 건물의 잔해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포로 로마노의 감상법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하루 만에 로마를 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일정에 쫓기는 로마의 여행객들이여, 포로 로마노를 허투루 보지 말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로마는 전설의 도시, 신기루의 도시로 남을 것이다. 포로 로마노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여유를 두고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그 길은 생각의 길인 셈이다. ▶ 3장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에 서면 키케로의 《의무론》의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함께 나누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로마 공화정의 이상을 현실 정치로 실현시키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포로 로마노의 ‘성스러운 길Via Sacra’을 무던히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나누었을 것이다. 멀리 유학간 아들에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의무라고 가르쳤던 키케로는 끝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생애를 마감한다. 키케로의 잘려진 머리와 팔이 로스트라에 전시되었을 때, 로마 공화정의 찬란했던 영광은 끝을 맺게 된다. 로마 공화정과 운명을 같이했던 그의 최후를 캄피돌리오 언덕이 조용히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 3장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광장

1527년의 로마 대 함락 사건, 그것은 로마인들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로마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교황 클레멘트 7세와 로마인들은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카를 5세가 로마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황제는 직접 로마를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감을 품고 개신교로 개종했던 독일 용병들을 고용해 로마를 초토화시켰다. 147명이 목숨을 잃었던 스위스 교황 근위대의 마지막 저항이 없었다면 교황 클레멘트 7세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감에 가득 찬 독일 용병들은 시스티나 성당을 마구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로마 시내에서 벌어진 약탈과 방화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스페인과 독일의 성난 침략군들의 함성 소리는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최후의 나팔소리와 같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때의 충격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니, 바로 그 작품이 <최후의 심판>이다. ▶ 14장 시스티나 성당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인간의 영혼은 권력과 욕망의 정도에 따라 얼마나 부침을 거듭하는지, 예술은 또 얼마나 인간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로마는 그래서 오랫동안 인류의 로망이 되었다.
로마라는 나라를 창건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 레무스를 죽여야 했던 로물루스의 숙명, 로마 마지막 왕가의 폭력 앞에 자신의 순결을 잃고 복수를 외치며 자결했던 루크레티아,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면서도 끝까지 자기 얼굴에 묻었던 피를 닦으려 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불타는 로마 시가지를 바라보며 트로이 성이 불타는 장면을 시로 읊었다는 네로 황제,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가 시대를 넘어 예술혼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세대 간의 대결을 펼쳤던 곳, 지금도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모여와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영혼의 순례지!
우리는 로마에서 ‘재탄생’을 경험한다. 로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다시 태어난 우리 자신이다.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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