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만 5년이 지나면 아이들도 인격이라는 것이 생길 테고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을 테니 육아일기는 5년 동안 쓰기로 작정을 하고, 실제로 첫 아이의 일기를 5년 될 때 끝냈고 그로부터 2년 뒤 둘째의 일기도 끝냈다. 그것은 내가 손으로 만들어낸 보석 같았다.
_서문에서(이옥선)
‘빅토리 노트’는 엄마가 나를 낳은 날로부터 내가 다섯 살 생일이 될 때까지 쓴 육아일기다. 나는 이 놀라운 책을, 대학 시험에 낙방하고 상심해 있던 어느 날 저녁 엄마로부터 받았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꺼내 내게 건네준 100페이지 남짓의, 20년이 지나 종잇장이 누렇게 바랜 일기장을 받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니 스무 살 생일 되면 줄라꼬 감춰놨던 건데, 힘이 될까 싶어 좀 땡겨서 주는 거다.”
_「서문」에서(김하나)
10시쯤 맹조산소에서 산파가 왔다가 곧 입원하라고 했다. 조산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쯤. 심한 진통이 왔다. 신음을 하며 어머니를 보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딸을 갖고 싶어 하는 나, “딸이구나”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이제까지의 진통이 가시는 것만큼 시원한 기쁨이 왔다.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산모한테 태기가 있으면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산파를 모셔 와서 출산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이것은 동생들이 태어날 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이후 조산소라는 곳이 생겨났는데, 아마 이런 산파역을 하는 분들 중에 조산원 자격증을 얻고 점차 발전한 곳이 아닐까 짐작된다.
친정어머니의 진두지휘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곳이 괜찮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계셨을 것이다. 첫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사람들이 볼 때는 좀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백날이라고 잔치를 해봐야 하나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하나를 못 돌봐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생략하고 사진만 찍어주기로 아빠랑 약속을 하고 그날 아빠가 일찍 퇴근을 해 와서 같이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는데 못 하고 말았단다. 이유는 하나가 자라면 아빠에게 직접 물어봐라.
아빠는 평생 가족들에게 욕먹을 짓을 참 많이도 했다. “다음 휴일 때쯤”에도 사진을 못 찍었는지 내게는 백일 사진이 없다.
다음 휴일에도 아빠는 밖에 나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빠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분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하나야가 못난이라고 놀려주는구나. 엄마가 보기론 그렇게 못난이가 아니고 오히려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데 외할머니는 하나야를 보고 “모개야” 하고 부르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진짜로 못났다고 “참못난아” 하고 부르신단다. 앞이마도 튀어나오고 뒤꼭지도 툭 튀어나왔다고 남자애 같다고도 하시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기엔 괜찮단다.
나는 이쯤에서 대부분 사람은 겪어보지 못했을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와, 나 되게 귀엽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 자기 사진을 보고 ‘나 되게 귀엽구나’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래보다 키가 작은 편이고 오동통한, 겨우 두 돌 지난 앞뒤짱구 못난이 하나야가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이런 말들을 종알거리는 걸 생각하면 너무 웃기고 귀엽다. 엄마가 내가 말하는 걸 잘 관찰 요약해서 옮겨둔 것 같다.
성질도 사납고 고집불통에다 자존심이 강해서 매를 맞기도 하지만 인정이 많고(만약 오빠가 매를 맞거나 하면 엄마에게 항의를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건강하고(키는 작지만 오동통하다) 정말 정말 귀엽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알아서 오빠와 놀이를 할 때는 항상 오빠의 부하가 될 줄 알아서 “대장님 나쁜 놈이 나타났읍니다” 또는 “박사님 공룡이 나타났읍니다” 등의 역할을 즐겁게 할 줄 알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수건을 가져오라, 휴지를 가져오라 등) 씩씩하게 잘한다. 하나는 아주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는 것 같구나.
하나가 중간쯤에서 집에 가자고 생떼를 써서 엄마가 혼이 났는데 비치호텔 앞에서 소풍 따라 온 엄마들이 많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데서 하나가 엄마를 발로 차고 소리소리 지르고 땡깡을 놓는데 다른 사람들이 달래도 안 되고 엄포를 놓아도 안 되고 할 수 없어서 엄마가 도망을 갔더니 그래도 한참 앙살을 부리다가 갑자기 사태를 깨닫고 울음을 뚝 그치더구나. 그래서 엄마가 하나 앞에 가서 “이제부터 엄마 딸 하지 말자. 엄마는 니 같은 딸 필요 없다”고 했더니 하나가 하는 말이 “야! 그래 잘못했다 안 하나”였단다. 그 소문이 우리 아파트 계단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단다 .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내 배경음처럼 깔리는 고성과 파열음 사이로, 한편 아주 대조적인 이미지가 서서히 떠올라 그 소란함을 덮으며 시야를 가득 채운다. 성당과 바다의 이미지다. (…)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바다가 항상 근처에 있다. 갯비린내와 반짝이는 물결, 파도 소리, 모래밭, 일렁이는 물속, 검은 바위들. 그 탁 트인 푸름과 반듯한 수평선.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끝없이 움직이는 물의 공간.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면 갑갑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바다를 본 지 오래됐을 때 그렇다.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들 중에 나를 가장 안도하게 하는 것은 성당과 바다의 이미지다.
열여덟에 시집오셔서 나하곤 딱 스무 살의 차이가 난다. 내가 열 살이라고 해봐야 어머니는 서른 살이었을 테니 제사에 파묻혀 질식당한 젊음이었지 않나 싶다. 그래도 그렇게 당찬 어머니가 계셔서 부모 없는 조카들도 시집· 장가 들이고 우리 육 남매를 대학까지 다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콩나물 반찬을 해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_「내가 콩나물을 사기 싫어하는 이유」에서
다 자란 딸이 엄마가 책을 전집으로 사주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어서 참 좋았다는 말을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찾아 읽기 마련이다.
_「어릴 때부터 독서 지도가 꼭 필요한가?」에서
젊었을 때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무엇을 바라며 갈등이 많았다. 나이 들수록 안정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환갑을 지나면서부터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는데 요새가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올 날보다 지금이 제일 젊은 시기이고 젊었을 때보다는 시간상으로나 경제적으로나(젊었을 때만큼 구매 욕구가 안 생겨요~) 그리고 마음 자체도 여유가 생겼으니, 또 행복해야 하는 책임까지 있다고 하니 지금 마음 놓고 행복해하기로 한다.
_「노인은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에서
보름달이 뜬 밤에 데이트해보셨나? 아마도 요즘 같은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날씨는 삽상하고 억새들이 지천으로 피어서 은빛으로 하늘거리고 구릉은 멀리 뻗어 있는데, 지금 막 거리가 가까워지려고 하는 남(요즘 용어로 썸남)과 인공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다만 달빛 교교한(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음) 그곳을 한없이 걷고만 싶던 밤이 있었다.
_「달빛 교교한」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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