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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맨해튼의 반딧불이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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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반딧불이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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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목록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뭐가 있었지? 자, 메모지, 볼펜, 티슈 등등등……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분실한 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분실한 게 뭘까? 내가 잃어버린 게 뭘까? 내가 잊어버린 게 뭘까?

어쩐지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 마지막 칸에 넣어두고 열쇠로 잠가버린 내용 없는 엽서들을 떠올린다. 그게 떠오르니까 그는 당장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봐요, 때로는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놔둬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린 것은 그저 잃어버린 것으로.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물론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특색 없는 하이힐이지만, 나는 하이힐을 신고 저런 식으로 격식 있게 걷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런 여자라면, 특색 없는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격식 있게 앞만 보고 걸어갈 수 있는 여자라면 아마 어떤 일이든 다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걸 상실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한번도 만져본 적이 없고 가져본 적도 없고 심지어 바라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그러한 것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었다고,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그런 상실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기 전에 이런 상상을 했다. 태풍이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는 상상. 허리케인 같은 것.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불어왔던 그 허리케인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심하면서 잔인하고, 슬프면서 화가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사는 건 그런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아, 괜찮을 거야. 언젠가 마치 끈 하나를 잡아당기면 엉킨 끈이 풀어지듯이 잘못된 일들이 고쳐질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상했다. 처음에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그걸 지킬 수 있게 되는 건지 모르게 되었다. 그게,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뭐였지? 핸드폰 소리가 들렸다. 잠시 졸음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이제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나는 당분간 죽지 않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때로는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놔둬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