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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 손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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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

손승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풀어낸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열세 가지 통찰을 우리 일상과 직결된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새로운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연결의 힘부터 당장 일상에 적용 가능한 기술의 종류는 물론 창의력 계발과 학습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까지,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흐름에 온전히 동참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한 권에 담았다.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비유로 4차 산업혁명의 본령을 짚어주는 이 책은 읽기 쉽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동시에 무수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간간이 등장하는 삽화와 배경음악은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경영서를 끝까지 읽게 하는 당의정 구실을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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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초연결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거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것들이 기존의 낡은 것들을 대체할 거라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의 모습은 마치 블록 판 위에 쌓아 올리는 레고 블록과 비슷해서, 이전의 시대를 대체하기보다는 빈틈을 메우며 층을 높여간다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하거든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기술의 모습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미처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하는 데 그 비결이 숨어있어요.

길찾기 서비스가 그렇듯 앞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거예요. 저는 이 경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넘나드느냐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은 화려한 디지털 기술의 총체가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새로운 방식으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아이디어 그 자체예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상을 움직이는 첫 번째 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새로운 연결(아날로그×디지털), 조금 딱딱한 말로 설명하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1,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아날로그 세상을 정교하게 업그레이드했어요.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을 통해 디지털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상상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했고요.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일 거예요.

복잡계 과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세상엔 ‘까다로운’ 시스템과 ‘복잡한’ 시스템이 있다고요.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지난 1차 산업혁명에서부터 3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세상을 까다로운 세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해왔어요. 더 어려운 학문, 더 정밀한 기술, 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면서 역사를 발전시켜온 셈이에요. 반면에 우리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만들어갈 세상은 이제까지의 까다로운 세상을 복잡한 세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될 거예요.
도대체 까다로운 것은 뭐고 복잡한 것은 뭘까요? 이 둘을 비교할 때 자주 드는 예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항공기를 만든다고 생각해봅시다. 항공기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에요.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서,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우리가 어렵게라도 항공기 만드는 법을 터득하면, 그때부터는 예측에 따라 항공기를 설계할 수 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반복적으로 똑같이 항공기를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놀랍도록 안전하게 항공기를 타고 전 세계를 두루 오갈 수 있지요. 제트엔진이나 인공심장도 마찬가지에요. 이들은 모두 대단히 까다롭게 만들어지지만, 우리는 기술로 그 과정과 결과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요. 이런 분야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온 쪼갠 다음 조립하는 방식이 놀라울 만큼 잘 통해왔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시스템은 다릅니다. 우리가 오늘의 일기예보가 맞았다고 해서 내일의 일기예보도 정확할 거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시스템은 예측하고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새롭고 훌륭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재미있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상을 넘나들도록 해주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서비스 이용이 순조롭지 못해 생기는 매듭이나 튀는 부분이 없이, 사용하는 내내 매끄럽게 연결되는 ‘심리스(seamless) 서비스’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여행에 동참할 테니까요. 반대로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툭! 걸리고 불편하다 싶으면 그냥 원래대로 아날로그 세상에 머무르려 할 겁니다. 간과하기 쉬운 이 자연스러운 흐름과 속도를 만드는 과정에 결국 새로운 세상의 가장 많은 기회가 숨어있을지 몰라요.

호프스태터와 상데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유추의 과정이 마치 옷장의 서랍에 옷가지를 나눠 넣듯이 경계가 명확하고 분명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요. 실제로 머릿속에서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기존 카테고리에 연결하는 것은 매우 잠정적이고 윤곽이 흐릿한 작업이라고 말이에요. 우리는 이제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은 토끼도, 판 토끼도, 알칼리 토끼도 모두 이런 ‘흐릿한 영역’의 어딘가에서 연결됐다는 사실도 알 수 있지요. 저는 창의성이 숨어있는 곳은 바로 이 잠정적이고 윤곽이 흐릿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대상이나 문제를 접했을 때, 우리의 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알고 있던 무엇이 아니라 낯설고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말이 되는 흐릿한 영역으로 우리의 사고를 연결해준다면, 그런 유추는 우리의 사고를 비옥하게 만들고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원천이 될 거예요.

어떻게 해야 직관이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것이 욕조 안이었고, 피카소도 주로 샤워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해요. 아인슈타인은 면도하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영감을 얻었고, 철학자 헤겔, 칸트, 비트겐슈타인, 니체, 루소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산책을 즐겼습니다. 훗날 애플 컴퓨터의 원형이 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앨런 케이는 사무실 한쪽에 1만 4000달러, 우리 돈으로 1500만 원이 넘는 샤워기를 설치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자기는 아이디어 대부분을 샤워하는 도중에 얻기 때문이라고 하면서요. (물론 회사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일단 저는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질문을 하나 정합니다. 그 후엔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듣거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매 순간에 그 질문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아주 천천히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틈틈이 이미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해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데요. 매우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때까지 조금씩 생각을 덧붙여나갑니다. 이렇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난 지식을 서로 연결해 겹겹이 층을 쌓는 것, 즉 ‘레이어드(layered)’가 중요해요. 옷 잘 입는 친구가 여러 개의 옷을 감각 있게 겹쳐 입듯 생각의 밀도를 높여가는 거죠. 어느 날 하루 동안 한꺼번에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깊이를 더해 계속 연결해보는 걸 추천해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우리를 잠시 상상해볼까요? 우리의 경제 활동은 대부분 개인과 개인의 거래, 요즘 말로 하면 P2P 거래의 형태로 이루어졌을 거예요. 누구나 거래 조건만 맞는다면 원하는 것을 맞춤 제작된 형태로 얻을 수 있었겠지요. 당시의 우리는 서로 믿을 만한 사람들끼리 물건을 빌려주거나, 집에서 재워주거나, 음식을 제공하거나, 동물 등을 이용해 짐을 옮겨주거나 사람을 태워주었을 거예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뢰였을 겁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공유경제 서비스와 아주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당시의 경제 활동은 주로 각 지역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연결된 작은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고, 오늘날의 공유경제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과 엄청나게 큰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