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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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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어보며 사람에 대한 성찰을 완성해온 작가 김애란이 소설가, 학생, 딸, 아내, 시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한 산문집을 출간하였다. 김애란은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명랑한 상상력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왔다.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작가의 성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 문학청년 시절, 성장기 환경에 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2부 너와 부른 이름들'은 작가가 주변 인물들과 타인에 관해 쓴 글이다. 동료 문인들을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주변에 대한 깊이 있는 눈길을 담아낸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은 문학 관련 글과 개인적인 경험담을 모았다. 작가가 지나쳐온 여행과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비망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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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고3 여름방학 때 나는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내 몸과 마음을 길러준 팔 할, 갈수록 뼈가 닿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가는 그 팔 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어릴 땐 꿈이 덤프트럭 기사였고, 아는 것 적고 배운 것 없지만 '그게 다 식구니까 그렇지'라는 말로부터 멀리 달아나셨던 분, 그렇지만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하신 분. 내겐 한없이 다정하고 때로 타인에게 무례한, 복잡하고 결함 많고 씩씩한 여성. 그리고 그녀가 삶을 자기 것으로 가꾸는 사이 자연스레 그걸 내가 목격하게끔 만들어준 칼국수집 '맛나당'이 나를 키웠다, 내게 스몄다.
―「나를 키운 팔 할은」

나는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처럼 근사한 비애도, 처참한 아픔도 한번 빠짐없이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내게 ‘사귀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보는 어느 상급생 오빠였다. 나는 운동장 멀리서 그 오빠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한 뒤 소식을 전하러 온 ‘방자’에게 무턱대고 ‘알았다’고 했다. 그러곤 무척 내성적인 데다 수줍음이 많았으리라 짐작되는 그 오빠와 소극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보름 만에 끝냈다. ‘그만하자’ 얘기한 건 내 쪽이었는데(뭘 시작했다고), 그즈음 교내 체육대회에서 그 오빠가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는 또래들 틈에서 너무 매가리 없이 휘청대고 끌려가는 걸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지금 여기」

비록 고향을 떠나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육면六面의 어둠 속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딸각이는 스위치 소리 한 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이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이 천장에서 총총 빛났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 스티커들.
(……중략……)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심란해했다.
(……중략……)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거기 별이 있단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곳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많은 부분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야간비행」

30여 년 전, 그러니까 1970년대 말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면 독곶리에 한 송방에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방 한쪽에 딸린 온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소개팅을 했다.
“뭐?”
‘온돌’과 ‘소개팅’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접한 내가 말꼬리를 올렸다. 주선자 둘, 당사자 둘, 청춘남녀 네 명이 좁은 온돌방에 옹기종기 앉아 어색하게 인사 나눴을 상상을 하니 내가 다 쑥스러워진 까닭이었다. 그건 뭐랄까. 마치 각 나라 작가들이 일본 전통난로인 ‘코타츠’ 주위에 모여앉아 담요를 덮고 귤을 까먹으며 진지하게 문학을 논하는 풍경과 비슷할 것 같았다.
―「카드놀이」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여름의 속셈」

오래전 나는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로 신애를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를 어떤 인물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신애는 ‘쪼그려 앉은’ 여자다. …… (중략)…… 그러니 누군가 신애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그녀가 지금, 거기, 쪼그려 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요 며칠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신애의 웅크린 뒷모습이 계속 아른댔다.
사실 난 신애가 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 곁에 다가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 보려한다.
그러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볼 생각이다.
당신, 대체, 거기서
무얼 그리 열심히 보는 거냐고.

세상에 ‘잊지 좋은’ 이름은 없다.

-「잊기 좋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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