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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 듀나(Djuna),김보영,배명훈,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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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듀나(Djuna),김보영,배명훈,장강명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SF 대표작가 듀나, 김보영, 배명훈과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작가 장강명. 이 책은 이들 4인의 작가가 모여 '태양계 안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규칙을 정하고 집필한 소설이다. 작가들은 각각 금성, 화성, 토성, 해왕성으로 배경을 골랐다.

금성탐사에 파견된 천재과학자 어머니와 대립하며 살아온 딸이 거대기업에 맞서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당신은 뜨거운 별에', 휴가 기간 동안 화성식민지 청사를 지키던 여성 공무원이 갑자기 촉발된 비상상황에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합절 휴가', 타이탄으로 구조를 떠난 우주선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극단적 대립과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을 AI의 시점으로 서술한 '얼마나 닮았는가', 거대 인공지능의 지배하에 트리톤에 살고 있던 아이들에게 어느 날 이상한 여자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두 번째 유모'.

배경에 대한 설정만 정하고 시작한 이 네 편의 소설은 놀랍게도 '시스템/거대권력/다수'에 맞서는 '소수자/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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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주복 안에 있는 로봇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로봇은 무표정한 얼굴을 돌려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본 뒤 정면의 구름을 응시한다. 구름은 태양빛을 반사하고, 그렇게 반사된 태양빛이 헬멧의 전면창에 다시 반사된다. 헬멧 위로 복잡한 음영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 덕분에 간혹 로봇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년은 계속 지표에 있는 로봇을 조종하며 살려달라는 모르스부호를 찍는다. 이미 로봇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데도. 손은 부르텄고 손톱은 갈라졌지만 멈추지 않는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안다. 희망이 사라진 순간의 파국을. 그때에 가장 약한 이들부터 살해될 것이라는 걸. 아무 이유도 없이. 단지 살해하기 쉽다는 이유로.

“아무리 그 믿음의 바탕이 이상하고 황당해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그걸 안 버려. 사람들은 믿고 싶으니까 그냥 믿어.”
“왜?”
“그냥 그렇게 진화했으니까. 그런 믿음을 가진 개체가 생존하기가 수월했거든.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고 커지면서 점점 그런 믿음이 위험해졌지. 세상과 함께 증오가 커졌고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해지니까 점점 믿음에 의지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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