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다나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나카의 특기인 범행 수법만으로 범인을 알아내는 범인상분석에 의하면, 이것은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니었다. 돈을 노리는 납치는 은밀히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을 골라 납치하는 경우에는 신속히 돈을 요구하는 것이 전형이다.
“이것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계획된 범행이야. 게다가 상대는 일본에서 가장 납치하기 어려운 로열패밀리라구. 결코 돈을 노린 범행은 아니지.”
“명성황후라고 있잖나, 우리가 흔히 민비라고 부르는.”
“있지.”
“그 명성황후를 정말 우리 일본이 죽였나?”
“그렇다네.”
“그 사실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겠지?”
“그렇지.”
“그 기록을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역사적 사실이 궁금하다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네.”
“아니, 그게 아냐.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생생한 실제의 기록이네.”
“그렇다면 역사란 뭔가? 현대사는 어떻게 기술되는 건가?”
“역사 기술은 힘이야. 힘 있는 자의 목소리가 기록되는 거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숨죽였던 목소리들이 조금씩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역사는 해석의 문제가 되지. 해석도 역시 그 시점에서 힘 있는 자의 목소리에 의해 좌우되지. 결국 역사란 힘이야. 학자들이란 그 힘에 기생하는 존재들일세.”
“아직도 미국에는 전범수사국이 있어. 대부분 독일 전범들이 잡히지만 간혹 우리 일본 전범들도 잡혀. 우리가 훨씬 덜 잡히는 것은 독일이 모든 자료를 공개하는 반면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정보 유출을 막기 때문이지. 전범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각종 문서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철저히 열람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중요 문서의 열람신청서를 보자고 하면 대뜸 의심부터 할 거야.”
“정신대 문제가 어려웠지요. 아직 살아 있는 본인들이 너무 많아서.”
대표 중 한 사람이 어려움을 토로하자 사이토는 갑자기 얼굴 표정을 확 바꾸었다.
“미친년들, 그중에 돈 안 받은 년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그년들이 돈 받고 맛있는 거 얻어먹던 얘기는 다 잊어버리고 전쟁에 지던 무렵 고생한 얘기들만 늘어놓으니 그런 거 아니오? 그때 고생 안 한 사람이 누가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전쟁 중에 그런 일은 당연지사 아니오? 지금 와서 남편들 다 죽고 나니까 그때 어쨌니저쨌니 하는 거 아니오?”
“요즘 자꾸 민비 생각이 나요. 죽으면서까지 왕세자를 걱정했다는 얘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 아픔과 괴로움이 어느새 내 마음 깊이 스며들었어요.”
“명성황후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면 아마 그 충격으로부터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요.”
기억에 남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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