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아직도 집중 받는 걸 극히 혐오하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선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 연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화도 잘 못 내고, 좋으면 좋은 티도 안 내고, 눈치 보고, 쭈뼛쭈뼛 전형적인 찌질이의 모습이 싫어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한다. 무대 위에선, 카메라 앞에선 내가 화내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주니까. 내가 웃는 걸 사람들이 건방지다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연기를 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딱 그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재미가 있다. 감독님의 “컷!” 소리 후에는 무시무시한 자괴감이 찾아오지만 뭐 그 순간만큼은 즐거우니 더할 나위 없다 하겠다.
_<찌질이> 중
‘고맙습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뭘 하시든 고맙습니다.’
수첩에 적힌 이상한 글자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스물다섯의 내가 스물여덟의 나를 위로한다. 동생 주제에 꽤나 위로를 잘한다. 가끔씩 느끼는 감정의 요동을 글자로 남겨보길 바란다. 그중 8할은 훗날 이불을 걷어찰 글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나를 세워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정민철의 폭풍커브. ’ 말도 안 되는 글자지만, 난 아직도 폭풍커브를 던지는 게 꿈이다.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나도 각도 큰 변화구를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 살아가시길 바란다. 직구만 던지면 얻어맞기 일쑤니, 변화구도 섞어가면서 살아가시길 바란다. 사는 데는 9회말도, 역전패 같은 것도 없을 것이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의외로 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길 때까지 그렇게 계속 살아가시길 바란다.
당신 지금 아주 잘하고 계신 거다.
_<수첩> 중
영화 같은 인생을 사시느라 수고가 많다. 그래도 우리 모두 ‘절망’치 말고 고구마를 심은 곳에 민들레가 나도 껄껄 웃으면서 살아가자. 어차피 끝내는 전부 다 잘될 테니 말이다.
_<영화 같은 인생> 중
그게 언제든, 그게 누구든, 문득 심장 언저리가 ‘물렁’해지는 응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마, 당신들도 그럴 것이다. 늘 달고 사는 여섯 글자가 필요할 터이다. 그 말 우선 내가 해드리겠다. 나중에 갚아라.
“칙칙… 다 잘될 겁니다.”
_<응답하라> 중
사람들이 한 사람을 이르는 것이라 하여 ‘이름’이란다. 참 많은 이름이 있다. 가급적 많이 부르려 한다.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않아도 좋다. 서로 기분만 좋으면 그만이다. 서로 이름을 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 큰 의미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내게 와서 “정민아.”라고 했을 때,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부르면 닳는 것도 아니고 많이 부르면서 살자는 말이다.
_<이름> 중
나와 관객 사이에는 스크린도 브라운관도 없다. 편집도 CG도 없다. 그저 미묘한 공기와 긴장감만이 보이지 않게 흐른다. 관객과 나는 그렇게 매일 다른 공연을 만든다. 스무 살, 매일 다른 공연을 보여준 선배님들을 보며 무대를 꿈꿨던 것처럼, 오퍼석에서 매일 선배들을 바라보는 스무 살 사빈이 녀석에게 십 년 전 내가 느낀 감정을 선물하고 싶다.
여덟 시가 되면 조명이 들어오는 무대. 그 무대 안에는 내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데, 딱 하나없는 것이 ‘나’였던 그 시절. 나는 그 시절의 ‘나’와 사빈이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때 나의 선배들처럼 말이다.
_<무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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