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이 책을 위한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나도 아날로그를 파괴한 디지털 테크놀로지 업계에서 아날로그가 갖는 역할에 깊이 매혹되었다. 나는 온라인 리테일러가 매장을 열면서 어떤 이점을 얻는지 보았고 온라인 매체들의 인쇄 발행물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날로그에 대해 나눈 가장 의미심장한 대화는 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 업계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그들은 이런 질문들과 매일 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디지털화가 가능한 사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잡지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할 것이고, 모든 구매는 웹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며, 교실은 가상공간에 존재할 것이었다.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일자리였다. 프로그램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비트와 바이트로 전환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디지털 유토피아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터미네이터와 마주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반격은 그와는 다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기술 혁신의 과정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혁신의 과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프롤로그)
디지털이 거의 고사시킨 아날로그 레코드판의 부활에 일조한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이었다. LP 시장은 점점 더 성장했고 LP 팬들은 레코드판을 사고팔기 위해 인터넷으로 모여들었다. 수백만 장의 앨범이 이베이에서 경매되고, 아마존에서 팔리고, 디스콕스 같은 거대 온라인 장터에서 거래되는 동안 디지털 음악의 장점은 단점이 되어버렸다. (1장 레코드판)
종이는 ‘쿨’해졌다. 오늘날 양초나 자전거가 기술적으로는 ‘한물간’ 물건임에도 ‘쿨’하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활자 인쇄기 제작사와 문구 회사들이 모든 도시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으며, 가장 잘 팔리는 출판물 중에는 어른들을 위한 컬러링북도 끼어 있다. 새로운 펜, 문구류, 종이에 특화된 작은 매장들이 세계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다. (2장 종이)
“처음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질이라서 화질이 개선되기만 하면 디지털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더 이상 가족 앨범은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어요. 손으로 만지거나 흔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지요.” (3장 필름)
게임을 혼자서 하든 여럿이 하든, 우리가 컴퓨터와 놀 때는 그 경험의 주도권을 소프트웨어와 나눠야 한다.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놀이의 경험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지만 프로그램과 기기가 그런 능력을 제한해버린다. 마인크래프트같이 유연한 게임조차 그렇다. (4장 보드게임)
디지털 경험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없다. 이런 것들은 기사를 소비하는 방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은 그렇지 않다. 아이패드로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쇄된 페이지에서 인쇄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런 정보의 과잉을 느끼지 못한다. (5장 인쇄물)
미국 사람들은 일주일의 휴가를 받으면 평균 하루 반 정도를 쇼핑에 쓴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 플러그인을 아무리 잘 디자인하더라도, 유튜브에서 아무리 많은 언박싱 동영상을 시청하더라도 그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은 온라인상에서 일어날 수 없다. (6장 오프라인 매장)
“테크놀로지가 더 복잡해지고 충분히 발달하게 되면 더 새롭거나 더 효과적인 테크놀로지로 대체됩니다.” 라파엘리는 내게 창조적 파괴의 전통적 경로를 설명했다. “하지만 특이한 상황들도 존재합니다. 죽은 테크놀로지들이 새 생명을 찾기 위해 위치를 재조정하는 거죠.” (7장 일)
“우리는 노출과 토론을 통해 배움을 얻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실 공간이었다. 시왁의 교실 벽에는 메모, 그림, 개념, 표어 등 통합사고나 디자인 사고의 여러 요소들로 채워진 종이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학기 내내 그것들을 보고 배웠다. (8장 학교)
낮에는 코딩을 하지만 밤에는 LP레코드판을 모으고 수제 맥주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고 낡은 오토바이를 수리했다. 더욱 흥미롭게도 아날로그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그들의 디지털 업무와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아날로그 도구와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디지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개인과 회사를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9장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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