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이란 엄마의 욕망에서 분리된 진짜 ‘자아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면, 결국 외로워지는 건 아이들 몫이 됩니다. 아이 자신의 자아 욕망을 감춘 채 어른이 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그런 비극의 주인공들이 성인이 되어 또다시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게 다 너희 좋으라고 그러는 거야.” 더 이상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위한다며 한 일들은 그저 엄마의 욕망을 채우고자 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아무리 장난이었어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싶다는 표현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외로움에 빠질 겁니다. 내가 죽고 싶다고 표현했는데 세상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자신의 존재 가치에 의심을 품게 됩니다. 세상이 바뀌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내 주변이 흔들리는 정도의 외부 반응이 있어주어야 합니다.
보통 자녀가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냐고 확인합니다. 화장실에서의 일을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끔은 학교 화장실은 어떠냐고, 그곳에서 아이들 간에 무슨 일이 없는지 물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꼭 찬찬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의 존재감은 자신의 허용 범위에 따라 위치가 결정됩니다. 허용 범위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까지입니다. 책임은 기다릴 줄 알고, 선악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고, 잘못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지 잘 살피고 조금씩 허락해주는 과정이 아이들을 청소년으로 성장시킵니다. 우리 아이는 늘 한 살 더 먹을 준비를 합니다. 그때마다 한 발자국 더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허락된 만큼 성장합니다.
사회 속 많은 타인들은 나에게 동조하기보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무수히 내놓습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과정은 나르시시즘이 아닙니다. 이 과정은 타인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질 기회를 자주 주어야 합니다. 그 용기에서 자신의 존재가 꿈틀댑니다. 타인과의 관계성 없이 ‘나’만 바라보는 아이는 자존감이 0입니다.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싶다면,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관계성을 배우는 시간(함께 놀기)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는 수많은 ‘저항’이 있습니다. 물론 저항의 대상은 대부분 엄마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는 만큼, 아이들은 저항을 꿈꿉니다. 엄마들은 원합니다. 아이들이 말 잘 듣기를 말이지요. 아이들도 원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복수하기를 말이지요. 복수하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넓히고 싶은데 엄마가 자꾸 막아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리 없는 복수를 행동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실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 시간과 학습량을 소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가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하지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결국 성실한 아이들이 해냅니다.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사교육을 통한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닙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꾸준히 기말고사 준비하듯 공부하는 근면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천부적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단순하다 싶을 정도의 패턴으로 주어진 학습량을 하루하루 묵묵히 소화해내는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엄마는 마흔 즈음이고, 아내가 갑자기 독감에 걸려 누워 있다면, 무조건 집에 일찍 들어가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작은 아이를 다루듯 죽도 끓여주고, 눈도 맞추고, 체온도 직접 체크해주기를 바랍니다. 아빠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 사춘기 자녀가 남편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 순간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새로운 애착 관계로 계약되고, 사춘기 자녀의 주체적 독립에 혼란이 옵니다. 엄마의 마흔 자리 옆에 사춘기 자녀가 서 있지 않게 하는 것이 아빠의 책무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아이의 사춘기는 아픈 엄마에게 종속됩니다.
엄마가 스스로를 평가받는 위치에 놓는 순간, 엄마의 교육관은 사라집니다. 할머니의 말, 할아버지의 눈빛, 아빠의 태도에 따라 두서없는 자녀 교육이 시작됩니다. 가족이지만 그들도 타인입니다. 타인의 의견은 존중하되 방향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내 나름대로 내 아들을 잘 키웠다’는 시어머니의 경험담을 듣더라도 항상 자신의 기준과 비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 아이에 관한 것만큼은 적어도 엄마로서의 결정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자존감을 조사하면 대부분 자존감이 낮게 나옵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의 부모는 자존감이 높습니다. 부모로서 나 자신의 자존감은 돌보지 않으면서 자녀의 자존감을 살리려고 노력해봐야 실패가 반복될 뿐입니다. 급한 마음에 자녀의 자존감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염려하기보다 일단 ‘나(학부모)’의 자존감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상에서 자녀의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내 자녀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 좋습니다. 행복한 순간이고요. 그래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초등 시기에 반드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경계선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돼서도 자기 자신을 허물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상대방과 마주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래 집단을 형성했다는 것은 염려의 대상이기보다 일단 축하해줄 일입니다. 자기중심성을 벗어났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모에게서 한 발자국 벗어나 타인과 관계 맺기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발달심리학자들이 한 아이가 또래 집단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내 자녀가 주체적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면, 오늘부터라도 자녀의 또래 집단에 대해 불안한 시선보다 긍정적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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