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짧은 사회 경험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게 있었는데, 사람들은 회사에 목매는 사람을 그다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밖에 믿을 게 없는 사람은 함부로 휘둘러도 된다고 착각하는 게 현실이다. 종종 상사가 대화 중간중간 아내가 돈을 잘 벌고 집안 환경이 좋다거나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있다는 것으로 자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 사람은 회사 밖에서는 별거 없다는 게 팩트다. 그냥 자신을 만만하게 보지 말아달라고 최소한의 장벽을 치는 거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줬다
--<하나만 걸려라> 중에서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서 솔직한 척 모든 질문에 대답했고, 이 세상에 내가 가진 콤플렉스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새로운 나를 창조했다. 그리고 퇴사하는 순간까지 일관성 있는 거짓말을 위해 긴장을 놓지 말자고 다짐했다. 딱히 얻을 게 없는 사람에게 굳이 내 약점을 들춰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앉아 있으면
---<칭찬도 가지가지> 중에서
“김 사원은 눈빛이 너무 좋아. 눈빛이 정말 좋다.”
(어머, 제 눈빛을 알아봐 주시다니 정말 황송할 따름입니다. 남자 친구조차 제 눈빛을 이렇게 칭찬해준 적은 없는데 말이에요.)
내심 기분 좋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한 이런 작은 칭찬들이 쌓여갈 때쯤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분들, 내가 일을 잘하기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저 말 잘 듣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상사에게 잘 보이려 기를 쓰고, 다른 동기를 칭찬할 때면 불꽃같이 질투하면서 내가 더 예쁨받고 싶다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지금 20대 후반인 내게) 기대하신다.
그냥 다시 어린아이로 태어나고 싶은 심정이다.
살아생전 내 책상 정리 능력을 점수로 평가받게 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치 책상 정리 능력을 보면 내 회사 생활 전반을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내 생활 태도에 대한 평가와 추측을 난데없이 마주할 때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상 정리 평가?!> 중에서
실장님이 순전히 자신만의 기준으로 날 평가했듯 나도 순전히 내 기준에서 실장님을 평가해보건대, 실장님은 현재 일하는 회사가 곧 자신의 인생 전부라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게 분명하다. 또한 신입 사원인 내 삶의 방향도 자신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미안하지만 나는 되도록 이 회사와 내 인생이 독립사건 같은 관계이기를 원한다.
늦어서 위험하니 까 집에 데려다주겠다니……. 솔직히 말하면 내 눈에는 이 사람들이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이전부터 계속 집에 데려다주는 게 기본 매너인 듯이 자기 멋대로 호의를 베풀어놓고, 나더러 알아서 고마워하라는 태도들이 상당히 거슬린다. 그냥 집 근처에 세워달라고 해도 굳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이 차장의 모습은 무례해 보이기까지 한다. 집에 잘 들어갔으면 잘 들어갔다고 문자 한 통 보내라는 부장님의 지시도 따라주기가 영 불편하다.
---<그냥 혼자 갈게요> 중에서
(이보세요, 나는 늘 만취 상태가 아니었고 밤길이 걱정됐으면 애초에 예고 없이 불러서 늦게까지 술을 먹이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여자 대접을 기대한 적 없는데, 오히려 당신들이 내게 남자 대접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직장 상사가 우리 집 위치를 정확히 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껄끄럽고요, 내키지 않는 호의더라도 받으면 마땅히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도 싫습니다. 다음에는 남자 친구가 벌써 회사 근처에 와 있다고 거짓말하는 게 더 좋은 방법 같네요.)
---<막내라는 이름> 중에서
상사가 신입 사원을 길들이려 하는 게 눈에 보일 때마다 내 마음은 삐딱해진다.
(상사야, 내가 너한테 칭찬받으면 기분 좋을 거 같지? 죄송하다고 말하는 거, 그거 진짜 죄송해서 말하는 것 같아? 왜 회사를 다니면 별로 고맙지도 않은 일에 필요 이상으로 고마워해야 하고, 그다지 큰 실수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또 막상 따지고 보면 일로 트집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 아, 회사에 일하러 온 거니까 그냥 서로 담백하게 일만 하면 참 좋을 것 같구나.)
자꾸만 묻지 않아도 돈 많다고 자랑한 사람이 백반 1인분에 소주 한 병도 안 사면 어쩌자는 건지. 혹시 ‘나처럼 돈 많이 벌고 빨리 모으려면 밥값 정도는 남한테 뻔뻔하게 떠넘길 수 있어야 한다’가 오늘의 팁이었던가요? 그리고 우리보다 월급도 많이 받고 법인카드 한도도 훨씬 높으면서 왜 자꾸 외근 나갈 때마다 우리한테 망고주스를 요구하십니까? 최소한 망고주스를 얻어 마셨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시든가요! 정말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거 아닙니다. 특히 지금 남자 동기들은 개인 차량 급하게 장만하느라 그것만으로도 숨을 못 쉬어요. 제가 생각하는 오늘의 교육 내용은 ‘혹여나 돈을 많이 벌더라도 팀장님처럼 살지는 말아야 한다’인 것 같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역시 신분 높은 귀족만 하는 거겠죠?
---<오늘은 네가 사> 중에서
“너, 코트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면 안 돼. 여기 보는 눈이 몇 개인지 알아? 영업하는 사람들 안 보는 척해도 이런 거 다 지켜본단 말이야!”
---<40명의 CCTV> 중에서
화장실에 가면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동하는 나를 누군가가 봤고, 그걸 금세 우리 팀장님한테 일러바친 거였다. 이 정도면 여기서 내 영향력은 거의 연예인 급인 게 분명하다. 연예인들이 왜 공황장애에 걸리는지 간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30초도 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순간에도 40명의 직장 상사들은 나를 향해 CCTV를 켜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코트 주머니들을 오늘 당장 죄다 꿰매놓아야 하나? 순간순간 보이는 내 행동 하나에 잘잘못을 따지는 이 사람들이 직장 동료라니! 한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키기도 힘든데 나더러 지금 40명의 기준을 만족시키라는 건가?)
출근을 하면서 내가 가는 곳이 회사인지 감옥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일을 하러 회사에 왔는데, 온종일 CCTV로 감시만 받다가 하루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틈만 나면 직장 생활 태도와 예의를 들먹이며 내 모든 말과 행동을 문제 삼기에 급급했다. 한마디로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외에는 전혀 관심 없는 종족들 같았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직장 생활 예절을 내게 끊임없이 주입해가며 사상 교육 하느라 분주했는데, 매번 끈질기게 운운하는 그 신입 사원의 열정과 의지라는 게 영 따라주기가 거북했다.
---<난 일하러 왔는데, 왜 너희는 일 빼고 다 중요하다 그러니?> 중에서
25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그 이상 산 척 연기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멘털이 유리처럼 부서졌어요. 철 든 어른처럼 사는 건 생각보다 더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거든요.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사람들한테 사기 치는 거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날 때가 많았어요. 무엇보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범법 행위를 무용담처럼 떠벌리는 그 상사를 볼 때마다 ‘사이코패스가 여기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왠지 그렇게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아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퇴사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어요.
---<사기꾼이 되는 과정> 중에서
단언컨대 나는 고작 이런 취급을 받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산 게 아니었다. 입사하겠다고 밤새 자소서를 끄적이던 예전의 나를 할 수만 있다면 결사코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누가 내게 직장인의 로망을 심어두었던가? 이제 보니 직장인들 내부는 낙후된 중고차인데 겉만 번지르르하게 외제차처럼 튜닝해놓은 불량품들이었다. 기껏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이 정도로 실망스러울 줄 알았으면 나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서의 내 직무는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인 게 분명했다. 이렇게 살 거였으면 그냥 돈 없는 백수가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실망과 배신으로 회사에 치를 떨게 된다> 중에서
나는 그와 마지막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인사팀장과 한 면담 이야기를 짧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인사팀장에게 불합리한 조직 문화와 회식 문화 때문에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인사팀장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더욱 실망스러웠다. 퇴사 사유를 말하고 있는 그에게 신입 사원의 기본자세를 교육했다고 한다.
---<알코올 쓰레기> 중에서
“신입 사원이면 조직 문화든 회식 문화든 적응하려고 노력해야지. 겨우 4일 출근하고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부터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내가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굳이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채 솔직한 내 감정들을 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또 혹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이야기가 모든 직장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누군가 이 책을 보고 작은 공감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에필로그: 세상 모든 김 사원들은 잘못이 없다> 중에서
혹여나 ‘내가 잘못했고 내가 이상하다’며 자책하고 숨어 있는 세상의 김 사원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책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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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뱉어주고 싶은 속마음_책읽는다락방J
그렇게 어렵게 직장에 들어간 '요즘 애들'이 회사를 떠난다. 단지 나약해서일까? 김 사원의 내뱉는 용기가 놀랍도록 부럽다. 아무도 들춰내지 않는 직장생활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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